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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돈이 쌈짓돈~ “혈세 줄줄 새고, 국민은 눈물 펑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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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장면1 軍 경비시스템까지 바꿨는데…

정부 예산 낭비 빨간 불 - 2009년 문제 예산 심층 분석 #낭비 줄여 후유증 덜어야 … 운용의 묘 발휘할 때

2000년 경북 예천 공항에선 민항 청사를 두 배 늘리는 공사가 단행됐다. 증축 비용만 380억원. 이 공항에 위치한 군부대 경비체제까지 바꿔놓을 정도의 역사(役事)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춘천~대구를 관통하는 중앙고속도로가 개통되면 항공기 승객 감소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이 공항은 증축 공사를 마친 지 불과 8개월 만에 폐쇄됐다. 수백억원대 나랏돈이 허투루 쓰인 전형적 사례다.

# 장면2 이상한 공공기관 이전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본사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에 따라 2012년까지 제주도 혁신도시로 이전한다. 신규사옥 건립비용으로 총 485억4000만원이 투입된다. 이 중 115억4100만원이 올해 집행된다. 부지매입·설계용역비 명목이다. 하지만 이 공단은 마뜩지 않다. 정태범 차장은 “왜 정부 예산을 투입해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제주상록회관으로 이전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제주시 이도1동에 위치한 지하 3층·지상 5층 규모의 이 회관엔 여유 공간이 많다. 본사 인력 340여 명을 수용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제주상록회관은 현재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적자 규모만 4억원(2007년 기준)을 훌쩍 넘는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기왕 옮길 거면 이 회관을 활용하는 게 경제적’이라는 건의서를 두 차례나 제출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의 대답은 번번이 ‘No’. 논리는 단순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제주혁신도시에 입주해야 공공기관 이전사업이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주상록회관은 아직 뾰족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매각도 여의치 않다. 제주 구(舊)시가지에 위치한 탓에 적당한 구매자를 찾기 어렵다. 1993년 100억원을 투입해 만든 이 회관은 ‘계륵’으로 전락했는데, 정부는 오늘도 나랏돈 쓸 생각뿐이다. 그래서 정부 예산을 ‘눈먼 돈’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한국 경제 안팎에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KDI는 한국 경제가 올 4분기부터 회복세를 탈 것으로 전망했다. 바닥을 헤매던 고용률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청신호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고용률은 59%를 기록했다. 두 달 연속 상승세다(2월 57%→3월 58%). 고용은 실물이 바닥을 찍은 뒤 3~5개월이 지나야 개선되는 대표적 경기 후행지표. ‘한국 경제가 바닥을 때렸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세출예산도 구조조정 시급

하지만 이 지표가 곧 경기회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신중론도 많다. 대규모 재정지출로 일자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고용률이 개선된 것은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책으로 사회적 일자리가 증가한 덕분”이라고 했다.

뒤집어 보면 이는 올해가 아닌 내년을 걱정하라는 조언일 수 있다. 재정정책으로 국가의 적자폭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더욱이 28조4000억원에 이르는 추경예산 편성으로 국가 채무는 전년 대비 19% 증가한 367조원으로 늘어났다. 국민 1명이 감당해야 하는 나랏빚은 이제 750만원에 육박한다.

정규직 근로자 월 평균 임금 201만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세출예산을 잘 관리해 불요불급한 낭비성 예산을 줄이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공직자가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라고 강조했다. 단 한 푼의 예산이라도 아껴 나랏빚 증가를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말뿐이다. 정부가 최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조기집행(131조원)한 예산마저 ‘마구잡이’식으로 쓰이고 있다. 감사원이 3월 실시한 ‘재정조기집행 실태점검’ 결과에 따르면 고양시 등 3개 기관이 총 179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낭비할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부처의 2009년 확정예산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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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인천국제공항철도.

부처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중복계상·타당성 검토 부족·사업계획 부실 등 이유로 예산 낭비가 확실해 보이는 항목이 적지 않다.

정세욱 한국공공자치연구원장(명지대 명예교수)은 “예산 관련 법령과 제도가 미흡해 혈세가 새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나랏돈을 쌈짓돈쯤으로 생각하는 공무원의 의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 올해 정부부처 확정예산 가운데 낭비 소지가 많은 것은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는 예산감시 시민단체 ‘함께 하는 시민행동’과 공동으로 문제성 예산을 선별해 유형별로 심층 분석했다.

1 부처 이기주의 ‘국고 낭비’ 주범

예산 낭비의 주범 중 하나는 부처 이기주의다. 각 부처는 통상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쉼 없이 경쟁하고, 다툰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는 물밑싸움도 치열하다. 건전한 경쟁은 긍정적이지만 이로 인해 낭비가 초래되는 사례도 있다. 이른바 ‘중복 예산’이 만들어질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는 올해 ‘글로벌 무역전문가 양성사업(무역인력 양성·플랜트산업 해외인턴·해외전시회 해외인턴)에 98억7300만원을 편성했다. 지난해(33억원)보다 199% 증가한 금액이다. 이 사업의 취지는 글로벌 무역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다. 취지는 분명 좋다. 하지만 이 사업은 국토해양부의 ‘무역전문가 양성사업’과 엇비슷하다.

특히 플랜트 해외 인턴사업은 유사함을 넘어 ‘똑같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양 부처는 2009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알력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국토해양부 해외건설관리과에서 지식경제부 측에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지 말라’는 취지의 공문을 수차례 보냈던 것.

국토해양부 정현석 사무관은 “지식경제부는 플랜트 산업 분야, 국토해양부는 플랜트 인력 양성이 관할”이라며 “무슨 이유로 똑같은 사업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가 옳든 그르든 두 부처가 유사 사업을 진행하는 탓에 예산 낭비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는 “유사사업을 통합 관리하면 그만큼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며 “통합적 사업계획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전문인력 양성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의 목적은 금융산업 요구에 부응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올해 편성된 예산은 12억1500만원. 하지만 이는 금융투자협회·자산운용협회에서도 진행하는 사업이다. 카이스트 금융 전문대학원도 금융전문인력 양성을 명목으로 15억원의 국고를 지원 받는다.

행정안전부 ‘해외 인터넷 청년 봉사단(30억3000만원)’과 외교통상부 ‘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 봉사단(509억원)’도 무엇이 다른지 모호하다. 행안부 청년 인터넷 봉사단의 취지는 해외 개발도상국에서 IT교육 및 홍보를 하는 것. 외통부 국제협력단의 해외 봉사단 역시 개도국 중등·대학생을 대상으로 컴퓨터 활용, 기초 프로그램 등을 교육한다.

비슷한 사업을 두 개 부처에서 각각 다른 예산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브랜드위원회가 지난 5월 두 사업을 ‘World friends Korea’라는 이름으로 통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복 사업을 뒤늦게 정리했지만 혈세는 줄줄 샌 지 오래다. 행안부의 인터넷 청년봉사단 사업은 2001년, 외교통상부의 해외 봉사단 사업은 1990년부터 추진됐다. 적게 잡아도 8년 동안 돈은 돈 대로 쓰면서 유사 사업을 펼친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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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눠먹기식’ 중복 예산도 문제

중복 예산은 각기 다른 부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같은 부처 안에도 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최인욱 예산감시국장은 이를 ‘나눠먹기식 예산 낭비’라고 말했다. 법무부 기획조정실에선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예산은 52억6300만원. 지난해(5억5200만원)보다 7배 늘어난 규모다.

그런데 같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선 ‘법 교육’ 사업을 한다. 올해 예산은 전년 대비 6억2300만원 늘어난 15억2300만원. 대체 무엇이 다를까?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윤일중 사무관은 “법질서 바로세우기 운동의 목적은 홍보이고, 법 교육은 말 그대로 교육이 중심”이라고 말했다. 목적은 같지만 사업수행 방식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세욱 교수는 “궁극적 목적이 같으면 유사 사업으로 봐야 한다”며 “두 사업은 수행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큰 틀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최인욱 국장도 “기획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며 “결국 비슷한 사업을 통합관리하지 못해 예산만 낭비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3 사후 평가 시스템 미비 ‘낭비 원인’

국정감사에서 ‘예산 낭비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면 뭔가 바뀔까? 그렇지 않다. 국정감사의 칼날만 피하면 도루묵이다.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재일동포재단(외교통상부)의 ‘재일민단 지원사업’(재일동포 사회의 구심점 재일민단 활성화 제고)은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은 2006년 국정감사에서 예산 과다계상 등 각종 문제로 홍역을 앓았다. 정부 지원금의 중앙 과다집중, 고위 임원 횡령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일동포재단 측은 “재일민단 중앙본부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줄이고, 정부 지원 예산도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지금은 어떨까? 정부 보조금은 여전히 중앙본부에 편중돼 있다. 재일민단 지원액도 그대로다.

오히려 2008년엔 전년(70억6100만원)보다 2억3900만원 증액된 73억원이 편성됐다. 올해에도 73억원이 유지됐다. 외교통상부 이영환 서기관은 “갑자기 지원금을 깎으면 재일민단이 적응할 수 없다”며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연착륙’을 꾀하겠다는 의미인데, 언제 줄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전혀 없다.

4 부실한 사업계획으로 혈세 줄줄

부실한 사업계획은 예산 낭비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정부가 12년째 추진하고 있는 행안부의 ‘도로명 개선사업’이 그렇다. 이 사업은 1996년 11월 내무부 실무기획단에서 시작했고,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화했다. 국민의 정부는 당시 해당 지역 주민이 부르기 쉬운 명칭을 택해 도로명 간판을 교체했다.

그러다 보니 황천길·야동길·부고길·사정길 등 부적절한 도로명이 탄생했다. 민원이 끊이지 않자 참여정부는 2005년 근거 법률을 제정, 문제점 해소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더 큰 ‘화’를 불렀다. 새롭게 제정된 근거법률에 따라 이미 교체된(2005년 전) 도로명판·건물번호판까지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체된 건물번호판 330만 개 중 280만 개, 도로명판 22만3000개 가운데 14만2382개를 다시 바꿔야 한다. 교체 비용만 984억원에 이른다. 올해 예산도 전년비 15% 오른 122억4300만원이 확정됐다. 추경예산 147억5000만원도 지원된다. 어마어마한 교체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사전계획이 구체적이고 탄탄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다.

정부의 행정편의주의와 주먹구구식 정책결정 및 집행이 초래한 예산 낭비다. 서울 본소를 원주시로 이전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도 문제다. 추정되는 이전 관련 총 사업비만 370억원. 올해 예산은 9억9800만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업계획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과수 감정업무의 50% 이상은 본소에서 담당한다.

남부(20%)·중부(12%)·서부(9%)·동부(7%) 분소의 역할은 미미하다. 예정대로 본소를 원주로 이전하면? 감정 업무에 치명적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본소 이전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다만 서울 분소를 새로 설립하겠다는 구상만 있을 뿐이다. 국과수 양진혜 담당은 “감정업무 공백 문제 때문에 (본소의) 원주시 이전을 반대했다”며 “우리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5 엉터리 타당성 검사, 예산 낭비 부추겨

국책사업을 추진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게 있다. 예비 타당성 조사다. 이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대한 경제성, 정책적 분석, 투자 우선순위, 적정 투자시기, 재원조달 방법을 검증하는 것이다. 기획예산처의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사업 선정지침’에 따르면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모든 사업은 이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대충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엉터리’ 타당성 검사는 오히려 정부 예산 낭비를 부추기게 마련이다. 인천국제공항철도 건설 사업은 부실한 타당성 검사의 폐해를 잘 보여준다. 이 사업은 인천공항~김포공항~서울역 간 61㎞ 구간에 복선전철을 건설하는 것이다. 인천공항~김포공항은 국고 4311억원을 투입해 완공했고, 김포공항~서울역 간 2단계 구간은 건설 중이다.

그런데 이 철도는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엉터리 타당성 검사로 수요를 잘못 예측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 예비 타당성 검사를 근거로 인천공항철도 건설 민간사업자와 ‘90% 실적 보장협약’을 체결했다. 가령 수입 100억원을 예측했는데, 실제 50억원에 불과하면 40억원(총 90억원 보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타당성 검사 결과, 실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해 ‘90% 실적 보장협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180도 달랐다. 2007년 1단계 구간 일일 평균 이용자 수는 1만3212명에 불과했다. 타당성 검사에서 산출된 예상 이용자 수(20만7421명)의 6% 수준이다. 2008년에도 실제 이용자 수는 예상 수치의 7%를 밑돌았다.

그러다 보니 어마어마한 혈세가 민간사업자 실적 보장에 쓰였다. 올해 예산안은 166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무려 60% 늘었다. 문제는 어쩌면 지금부터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실시한 ‘인천국제공항철도 추가 역사 신설 타당성 재조사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31년 실제 이용자 수는 예상치 대비 47%에 머무를 전망이다.

향후 20년간 민간사업자 수입 보장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쓸지 모른다는 것이다. KDI국제대학원 함상문 원장이 “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예비 타당성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타당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혈세가 그만큼 낭비되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정권이 교체돼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예산 낭비 행태다. 나랏돈을 펑펑 쓰면서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는 정부도 그렇지만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국민도 문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지금, 우리는 기업 구조조정에만 매달려 있다. 하지만 먼저 바로잡아야 할 것은 정부 예산이다. 특히 세출예산의 구조조정은 발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산 운용의 진정한 ‘묘’를 발휘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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