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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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대 대통령으로부터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 라는 찬사를 들은 대한민국 국회는 그 찬사에 마음 쓸 필요가 없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권의 횡포와 싸우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니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필칭 6.25이후 최대의 국난을 맞았다는 요즘 국무총리 인준을 둘러 싸고 멱살극을 벌인 국회에 똑같은 찬사를 보낸다면 아마 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인준 국회를 공전시키고 나중엔 멱살잡이로 투표를 중단시킨 작태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그렇게 돼버린 원인은 무엇일까. 몇가지 가설로 정리해 본다.

1.거야 (巨野) 의 연기 (演技) 미숙설 3월2일 오후 3시42분 총리 인준안에 대한 표결이 시작됐다.

부표 (否票) 를 던지기로 당론을 모은 거대야당의 의원들은 줄줄이 기표소로 들어 갔다.

기표소에서 어떤 의원들은 한 10초쯤 있다 나왔는데 어떤 이들은 2, 3초만에 나왔다.

어떤 눈치없는 이들은 아예 기표소에 들르지도 않고 투표함으로 갔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집단 백지투표나 기권을 감시하는 여당의원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가 있나. 좀더 끄적거리는 척 시간을 끌었어야지, 쯧쯧. (그런데 소수 여당에 여포 같은 맹장이 많습디다. 그래요?

呂布인가요, 女布인가요. ) 2.소여 (小與) 의 자충수 (自充手) 설 바둑에서 자기 수를 줄이는 것을 자충수라고 한다.

당초 법대로 총리 인준에 관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자고 주장한 것은 소수 여당이다.

그것은 매우 사리에 맞는 주장이고 이를 거부한 야당은 억지를 부린다고 매도당했다.

(이탈표를 막기 어렵다고 헌법에 정한 무기명 비밀투표를 반대하다니!) 그러나 부결에 자신을 찾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야당이 좋다 표결하자 하니까 이번엔 여당이 그 표결을 육탄공세로 막았다.

멱살잡이 난투극의 도화선은 결국 여당이 제공했으니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아니냐는 것이 이 가설의 골자. 3.내우외환 (內憂外患) 특기설 바깥에서 환란 (患亂 = 換亂) 이 터지면 한데 뭉쳐 막아내는 것이 순리인데 한국 국회는 외환이 닥치면 곧 내우를 만들어 낸다는 이론이다.

이 가설은 내우 제조가 한국 국회 나아가 한국 정치의 특기라고 주장한다.

무슨 그런 이론이 있느냐는 반론에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때도 당쟁을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하는 것이 이 가설의 특색. 4.망각 소년설 가게에 심부름가서 부모의 말을 까먹는 아이는 후일 자라서 국회의원이 된다는 유머가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모두 이 아이와 같다는 이론이다.

국회의원이 됐지만 의원으로서 할 일을 망각했고 또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를 헤쳐 나가는 것과 같은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른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원인 진단이 철저하니 그에 따르는 대책 또한 무성하다.

두가지만 소개한다.

1. '30선' 감축설 어려운 시절에도 정쟁만 벌이는 국회의원은 그 숫자를 대폭 줄여야 된다는 주장. 현재보다 30명을 줄이자고 하다가 아니 30%를 줄여야 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30%만 남기자고 한다.

2.억만장자 급구설 동전 한닢을 넣으면 정치인 한명이 나오는 기계를 만든 사람이 나중에 백만장자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정치인 한명을 넣으면 동전 한닢이 나오는 기계를 만든 사람은 억만장자가 됐다고 한다.

이 억만장자는 지금 어디 있는고?

김성호〈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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