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26년 만에 ‘평화의 봄’ 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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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승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테러리즘에 대한 승리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17일 밤(현지시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AP, AFP 통신 등 외신은 이렇게 전했다. 26년간 계속된 정부군-타밀 반군(LTTE)의 내전이 끝나자 수만 명의 시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날 오전 타밀 반군의 국제협력 담당자인 셀바라사 파트마나탄은 친반군 성향의 웹사이트 타밀넷에 올린 성명에서 “정부군과의 싸움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투는 결국 비극으로 끝났고, 이제 우리는 총을 내려놓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죽은 자들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다는 회한만이 남았다. 국제 사회에 우리 민족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일종의 항복선언문이다. 1983년 “스리랑카 정부가 소수민족인 타밀족을 차별하기 때문에 독립국을 세우겠다”며 총을 든 지 26년 만이다. 내전으로 그동안 모두 7만여 명이 희생됐다.


◆반군 소탕작전은 계속=정부군은 반군 소탕작전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군 우다야 나나야카라 대변인은 17일 “아직도 마지막 반군들이 저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16일에도 정부군은 70여 명의 반군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정부군은 또 그동안 반군 거점인 동북부 해안선 부근에 인질로 잡혀있던 민간인 5만여 명을 모두 구출했다. 유엔은 올 1월부터 이달 7일까지만 반군의 인질이 됐던 민간인 7000여 명이 숨지고 1만670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은 19일 국회에서 전국에 생중계된 방송을 통해 내전 종식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타밀족 포용 여부가 변수=내전은 끝났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우선 내전의 원인이 됐던 타밀족에 대한 차별이 없어질지 의문이다. 이미 유엔이 개입해 인종차별을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P통신은 이날 타밀반군(LTTE)의 최고지도자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이 정부군에 사살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스리랑카 국방부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프라바카란이 동료들과 함께 앰뷸런스 차량을 타고 교전 지역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정부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타밀 반군은 이를 부인하면서 반군이 싸움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배후에는 프라바카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LTTE를 창설한 프라바카란은 지난 25년간 스리랑카 내 다수 민족인 싱할리족의 차별에 반대해 전 세계 최대 반군 조직을 이끌며 무장투쟁을 주도해 왔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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