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서리 내각]김대중대통령과의 색깔차 조화가 첫관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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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실세총리 시대는 지금까지 헌정사에 없었던 새로운 실험이다.

그리고 실세총리란 곧 지금까지 대통령이 장악해온 권력을 나눠가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실세총리 (서리) JP가 풀어가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김대중대통령과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루며 권력을 나눠 행사하느냐는 부분이다.

반평생을 2인자로 살아온 JP의 정치역정으로 미뤄 당장 무슨 불협화음이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JP의 취임일성도 "대통령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 는 몸낮추기다.

그러나 JP는 태생부터가 金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보수주의자다.

일단 몸을 낮춰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 수행과정에서 이견이 노출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북관계에서 그런 이견의 폭은 클 것이다.

당장 며칠 앞으로 다가온 미전향 장기수의 특사문제부터가 JP와는 맞지 않는다.

金대통령은 평소 재야단체 등에서 주장해온 미전향 장기수의 특사를 적극 검토중이다.

그러나 JP는 대선과정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을 때 공식적으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측근들에게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뜨거운 이슈는 안기부법과 보안법의 개정이다.

金대통령은 과거와 달리 이 부분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상당히 보수화했지만 여전히 안기부의 수사권 남용과 보안법상의 불고지죄 조항 등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JP는 이들 쟁점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통령이나 JP나 한결같이 최우선 과제로 인정하는 경제문제에서도 이견은 없지 않다.

대표적인 시각차는 가장 민감한 재벌정책 분야다.

金대통령은 '재벌의 시대는 갔다' 며 재벌에 대해 회장실.기조실 폐지 등을 종용해 왔으며, 특히 재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김태동 (金泰東) 교수를 경제수석으로 임명함으로써 자신의 재벌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JP는 3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실업계 사람들도 발전적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뚝딱 거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며 점진적.자발적 개혁을 주장했다.

방법론의 차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정책 수행과정에서 갈등의 소지는 적지 않다.

물론 이같은 이견과 갈등이 조화만 잘 이루면 적절한 균형감각으로 오히려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견을 건전한 논의과정으로 승화시킬만한 시스템은 갖춰져 있다.

문제는 시스템보다 운영방식이다.

양당의 공동정권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이기에 협의채널의 운영 역시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金대통령과 JP총리간의 큰 이해가 일치할 경우 사소한 정책이견은 협의과정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JP의 가장 큰 과제는 대통령을 얼마나 잘 설득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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