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출판의 힘은 도서관에서 나옵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출판인 K씨가 몇년 전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서울대에 유학 온 한 일본인이 한국의 민중문화와 민속 관련 자료들을 아주 열심히 모으더랍니다. 그 배경이 궁금해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책을 내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답니다. 일본에서 그런 책이 팔리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서점에서는 안 팔리더라도 도서관 등에 3000부는 나간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외면하는 우리나라 관련 자료가 일본에서는 체계적으로 쌓여가는 ‘기현상’의 뒤에는 일본 도서관이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서관이 출판사에 도서 기증을 요청하기도 하는 우리 현실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피할 수 없을 듯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미국 기사입니다. 1만6000여개의 미국 도서관에서 많이 대출되는 책의 목록이었습니다. 『The South Beach Diet』『Against All Enemies』『Plan of Attack』『Eats, Shoots & Leaves』등 주로 서점에서 많이 팔리는 책들이 즐겨 읽히고 있었습니다. 책을 살 경제적 여유가 없다 하더라도 도서관을 찾을 성의만 보인다면 누구나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여건입니다.

그 기사는 미국 도서관들도 기부금이 갈수록 줄어들어 고민에 빠졌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만 미국 도서관들이 도서구입비로 지출하는 돈은 1년에 자그마치 20억달러랍니다. 약 2조4000억원입니다. 국내 단행본 시장의 규모가 약 1조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 도서관의 구매력은 실로 엄청나지요. 미국 출판의 힘은 도서관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젠 우리도 내용이 알차고 자료적인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면 2000부 정도는 소화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명진 기자 Book Review 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