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37번 국도 따라 ‘향수’의 향기 흐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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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장계관광지에 조성된 시비공원 ‘시문학 아트로드’가 16일 문을 열었다. 관람객들이 제17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작 유자효 시인의 ‘세한도’ 시비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향수’의 고장 충북 옥천군은 비에 젖고, 향수에 젖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50)을 기리는 제22회 지용제가 15~17일 충북 옥천에서 열렸다. 옥천군·옥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중앙일보·문화체육관광부 등이 후원하는 행사다.

16일 서울에서 출발한 ‘문학테마열차’는 이근배(69)·이수익(67)·오탁번(66)·유자효(62)·이가림(64)·도종환(55) 시인과 구보 박태원(1909~87), 평론가 김환태(1909~44) 선생의 유족을 비롯해 300여 명을 태우고 달렸다. ‘문학사랑’과 ‘파라다이스티엔앨’이 꾸린 문학열차는 시낭송과 음악,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판의 봄빛으로 가득찼다.

올해 지용제에선 정지용 시인의 대표작과 역대 지용문학상 수상작 시비를 세워 꾸민 ‘시문학 아트로드’가 선보였다. 회색빛 바위에 천편일률적으로 새긴 전형적인 시비가 아니었다. 공원 입구 바닥에는 지용의 시가 여럿 새겨진 동판이 놓였고, 돌에 새긴 것부터 투명한 아크릴에 흰 글씨로 새긴 시비 뒤편으로 산과 강의 풍경이 보이게 만든 것까지 다양했다.

각양각색 시비가 조화를 이룬 ‘시문학 아트로드’는 옥천군이 추진중인 정지용 시문학 테마 공공예술프로젝트 ‘향수30리’의 일부이기도 하다. ‘향수30리’는 옛 37번 국도변 전체를 정지용의 시를 테마로 바꾸는 작업이다. 특색 없던 식당들이 정지용 시에서 이름을 따와 ‘풍랑몽 짬뽕’ ‘진달래 상회’ ‘얼룩백이황소정육점’ 등으로 간판을 바꾸고, 낡은 버스정류장은 독서등과 잉크·펜이 놓인 시인의 책상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용제 기간 중인 16일 열린 ‘지용문학포럼’에서는 박태상(54) 한국방송대 국문과 교수가 ‘정지용과 문장파 근대미술가들’이란 주제로 정지용 문학과 근원 김용준(1904~67) 미술세계의 연관성을 분석해 주목 받았다.

‘문장’지의 표지·장정을 맡으며 편집인 역할을 했던 김용준의 ‘전통부흥론’은 ‘문장’지 시 편집을 맡은 정지용의 후기 시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행사 기간 동안 지용백일장, 시가 있는 향수 음악회, 향수 사진전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렸다. 정지용을 아끼는 사람들의 모임인 ‘지용회’ 사무총장 박현숙(62·깊은샘 출판사 대표)씨는 “옥천군 전체가 지용의 시에 흠뻑 빠져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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