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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개발한 ‘가시 없는 아카시아’, 중국·미국서 종자 수입해 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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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4면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은 양봉업자들의 가장 바쁜 달이다. 양봉업자들은 아카시아가 ‘명퇴’되면 우리나라 꿀산업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중앙포토

‘명예로운 은퇴’인가, ‘강제 퇴역’인가.

아카시아, 진짜 쓸모없나

산림청 전범권 산림자원과장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더 이상 아카시아를 심을 계획은 없다”며 “아마 이 상태로 십 수년이 지나면 아카시아 나무는 우리나라 땅에서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명퇴 쪽에 더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외래 수종인 아카시아 나무가 1960, 70년대에 산림녹화의 일등공신으로 임무를 완수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산림청은 아카시아 대신 소나무나 참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 종이면서도 “더 보기 좋고, 경제성도 뛰어난”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아카시아는 임학계에서 ‘선구(先驅) 식물’로 불린다. 자연환경이 척박했을 때 마치 선구자처럼 나타나 번식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는 소나무나 참나무 등 다른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빠르게 쇠퇴하는 생태학적 성격을 묘사한 말이다. 하지만 최근 아카시아 나무의 운명은 ‘명퇴’가 아닌 ‘강퇴(强退)’ 성격이 짙다. 생생하게 꽃을 피우고 있는 상태에서 대거 잘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시아의 퇴장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안전’과 ‘경관’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동국대 오충현(환경생태공학) 교수는 “아카시아는 빠른 속도로 자라지만 뿌리가 깊지 못하다. 이 때문에 병이 들거나 늙으면 뿌리째 쉽게 넘어질 수 있어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최근 쇠퇴기에 들어선 탓에 고사목이 많이 나타나 보기에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자란다면 문제가 없지만 인가 주변에 있는 아카시아는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는 설명이다.

산림청의 입장이 ‘명퇴’로 기울다 보니 아카시아에 대한 연구도 거의 중단됐다. 아카시아가 한창 번성하던 60, 7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아카시아 연구가 활발했다. 산림과학원은 60년대 초 육종을 통해 가시 없는 아카시아와 잎이 넓은 아카시아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가축 사료가 부족하던 시절 아카시아 잎을 동물의 먹이로 쓰기 위해서였다. 한국 산림청의 작품인 가시 없는 아카시아는 미국과 중국에서 역수입해 가기도 했다. 정작 국내에서는 이들 변종 아카시아를 찾아보기 힘들다. 아카시아 잎이 가축 사료용으로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제 가시 없는 아카시아는 경기도 수원의 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의 앞마당에서 잊혀진 존재로만 남아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 속을 태우는 곳도 있다. 꿀로 먹고사는 양봉협회다. 아카시아가 사라진다면 연간 3000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시장이 없어지는 셈이다.

산림학자들도 아카시아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빨리 자라면서도 재질이 단단해 목재로서 가치가 높은 데다 꿀도 많이 생산하는 대표적 경제수종이라는 주장이다.
경북대 박용구(임학과) 교수는 “헝가리에서는 아카시아가 꿀뿐 아니라 대표적인 목재 자원으로 대접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육종과 보호·관리를 통해 아카시아를 보다 곧고 굵은 수형의 나무로 키워 가면 계속해 훌륭한 자원으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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