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재즈를 위한 레이블 ‘블루 노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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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호 07면

재즈의 명가(名家) 블루 노트(Blue Note)는 20세기의 위대한 즉흥예술인 재즈와 동의어로 불릴 만큼 재즈의 대명사로 기억된다. 그 블루 노트의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음반 ‘Blue Note’(워너뮤직)가 출시됐다.

모던 재즈의 분수령, 블루 노트 70주년 기념 앨범 ‘Blue Note’, 워너뮤직

1939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알프레트 라이언이 설립한 블루 노트는 부기우기 피아니스트 앨버트 애먼즈를 시작으로 수많은 재즈 거장의 등용문이자 창작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며 스윙·비밥·하드밥·프리·솔재즈로 이어지는 재즈사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델로니어스 몽크,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아트 블레이키, 캐논볼 애덜리, 덱스터 고든. 이름만 들어도 절로 탄성을 자아낼 모던 재즈(Modern Jazz)의 거장들이 모두 블루 노트에 소속돼 활동했다.

역사가 기억할 재즈 명연과 명인들을 배출했다는 의미에 더해 블루 노트는 ‘재즈 미학의 절대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존재 의의가 남다르다. 전속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가 제시한 사운드는 이후 모든 재즈 리코딩의 표준이 됐다.

사진작가 프란시스 울프가 남긴 쿨(Cool)한 감성의 음반 재킷 디자인 역시 이후 모든 재즈 아트 워크(Art Work)의 절대 기준으로 자리했다. 무엇보다 레이블의 내용을 구축해 온 소속 아티스트들의 비범한 창작열은 비밥과 하드밥으로 대변되는 모던 재즈의 분수령으로 기억되며 ‘아티스트의, 아티스트를 위한 레이블’로 추앙되고 있다.

영원한 재즈계의 신화로 기억되는 블루 노트, 하지만 존폐 위기란 시련도 있었다. 1960년대 후반 팝과 록으로 대변되는 대중음악 인기에 밀린 블루 노트의 불투명한 미래는 프로듀서 마이클 쿠스쿠나와 자칭 ‘블루 노트 폐인’이었던 EMI 사장 브라이스 룬드발이 레이블을 인수하며 전기를 찾았다. 1985년 카네기홀에서 열렸던 블루 노트 재건 기념 공연 ‘One night with blue note’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 지금까지 그 신화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3장의 CD로 구성된 블루 노트 70주년 기념 앨범은 블루 노트의 출범을 알린 앨버트 애먼즈의 ‘Boogie woogie stomp’(1939)를 시작으로 블루 노트의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퍼 디바(Diva)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2002)에 이르는 ‘재즈의 위대한 순간’들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초기 블루 노트 시절부터 모던 재즈의 전성기였던 1950년대의 명연들을 집약한 CD1엔 소프라노 색소폰을 대중화한 시드니 베셰의 고전 ‘Summertime’(1940), 비밥 피아니즘의 창시자 몽크의 ‘Criss Cross’(1947), 재즈 색소폰 연주의 지존 콜트레인의 ‘Blue train’(1957)과 애덜리의 ‘Autumn leaves’(1958), 하드밥 지존 블레이키의 ‘Moanin’(1958), CBS FM ‘올 댓 재즈’의 시그널 뮤직인 소니 클락의 ‘Cool struttin’(1958)을 수록했다.

블루 노트의 전성기인 1960년대 명연을 수록한 CD2엔 펑키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1964) , CF 음악으로도 친숙한 허비 행콕의 ‘Cantaloupe island’(1964), 블루지한 기타 선율이 압권인 케니 버렐의 ‘Midnight blue’(1963)를 소개한다. 블루 노트의 현재와 미래를 소개한 CD3엔 재출범한 블루 노트 1호 뮤지션인 스탠리 조던의 ‘Freddie freeloader’(1984)를 필두로, 에시드(Acid) 붐을 몰고 온 US3의 ‘Cantaloupe’(1993)와 여전히 진행 중인 블루 노트 신화의 주역들인 노라 존스, 다이앤 리브스, 재키 테라슨, 카산드라 윌슨, 테렌스 브랜차드의 대표곡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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