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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한국와 일본, 왜곡과 컴플렉스의 역사'…교류역사 총체적 접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건축용어에 조감도 (鳥瞰圖)가 있다.

하늘 높은 곳에서 건물 전체의 윤곽을 내려다 보는 그림이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이런 조감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곳은 아마도 한일 관계사일 것이다.

화해.이해보다 반목.갈등이 우세한 현실을 넘어서 양국의 과거를 보다 폭넓고 냉정하게 정리하는 작업은 이른바 태평양 시대를 맞는 오늘의 시점에서 더욱 유효하기 때문. 3.1절을 앞두고 출간된 '한국과 일본, 왜곡과 콤플렉스의 역사' 는 이 같은 시대적 요청에 답하고 있다 (전2권.자작나무刊) . 주로 구한말과 일제침략기에 행해진 일본의 만행에 초점을 맞춘 책들과 달리 고대 일본문화의 뼈대를 형성한 야요이 (彌生) 문화부터 올 초 일본의 일방적 어업협정 파기까지 '가깝고도 먼' 양국의 관계를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필자들은 지난 92년 발족한 한일관계사학회 (회장 나종우 원광대 교수) 소속 학자 36명. 지난 3년 동안 사회.문화.정치.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54개의 주제를 선정, 두 나라의 지난 발자취를 압축했다.

한일관계라는 한 분야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 나아가 각 쟁점의 단선적 나열에 그치지 않고 그들 사이의 연계성 및 교훈 등을 제시해 새롭다.

일례로 임진왜란 후의 국교 재개와 지난 65년의 국교정상화 조약, 그리고 올해 1월말의 어업협정 파기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사실이지만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과 일본 사이엔 희대의 외교사기 사건이 있었다.

국교재개 실무를 맡았던 대마도의 장군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의 국서를 조작해 조선에 보냈고, 조선국왕의 국서를 다시 위조해 일본 막부 (幕府)에 보냈다.

그래서 일단 양국의 통로는 다시 열렸지만 전쟁에 대한 일본의 공식적 사과가 생략됐고, 30여 년 뒤에는 조작 사실이 알려져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지난 65년의 국교정상화도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따른 한국인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미봉책으로 마무리됐으며 올해의 어업협정 파기도 한국측의 의견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한 마디로 한.일 양국의 어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오늘에 대한 발전적 대화가 결여됐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특히 저자들은 국수주의적 역사의식으로 지난 역사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합리화한 일본인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벗겨나간다.

지난 1백 년동안 논란이 돼온 백제의 칠지도 (七支刀) 는 일본에 바친 선물이 아니라 친선외교를 위한 하사품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화한 왜장 김충선은 일본인들의 주장처럼 가상인물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음을 밝히는 동시에 일제통치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도왔다고 말하는 식민지공업화론 및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도 통렬하게 비판한다.

또한 임진왜란 후 부산 등에 설치됐던 왜관에선 조선 여인과 체류 왜인 사이의 교간 (交奸) 사건이 커다란 사회문제가 됐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전달하며, 현재 재일교포들은 수적으로 줄어들 뿐 아니라 민족 동질성도 상실해가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도 촉구한다.

이밖에도 고려불화와 팔만대장경, 조선도공의 후예, 주자학 전파 등 문화교류 등을 통해 양국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파고들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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