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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 칼럼]김대중시대와 IMF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기 소르망은 최근저 (最近著) '열린 세계와 문명창조 (박선 역 : Le monde est ma tribu, 세계는 나의 部族)' 에서 세계주의를 향해 넓어가는 경제와 부족주의에로 좁아드는 정치, 이 둘 사이의 전쟁을 현대성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그럴싸한 패러다임이다.

이 전쟁은 냉전시대를 소련의 패배로 끝나게 했다.

그러나 소련의 패배가 이 전쟁의 끝은 아니었다.

이 패러다임을 안경 삼아 쓰고 바라보면 91년의 걸프전쟁, 94년의 라틴아메리카 경제위기, 97년의 아시아 경제 위기가 모두 동일한 전쟁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람들에게 닥친 지금의 경제붕괴도 그 한 전장 (戰場) 이다.

한국인들은 이 전장을 'IMF시대' 라고 명명 (命名) 했다.

이 이름 속에는 이 전장이 외부세력에 의한 한시적 (바라건대) 피지배임을 시사하려는 부족주의 정치적 반작용과 단기적 절망을 함께 넣어 두고 있다.

절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그 절망의 크기에 비례하는 장기적 희망을 함께 담는 것은 한국인의 가장 보배로운 민족성이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이런 희망마저 자칫 부족주의 정치적 성격의 것으로 눌러앉아 버리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붕괴한 원인을 다만 무역적자와 외환부족에 돌리는 것은 금물이다.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와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다.

그에 더해 세계 최고의 제조업 기술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8년째나 경제성장이 멈춰져 있다.

그들은 그 원인을 '버블' 이라고 명명한 실체 없는 적에게 돌리고 있다.

한국의 외환부족과 일본의 버블은 '부족주의 정치' 가 '세계주의 경제' 를 타고 걸터앉아 있는 동일한 현실의 다른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이 전쟁의 적이 바깥에 있지 않다는 특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투기적 국제 금융가를 이 전쟁의 적인 줄로 알거나 미국의 음모가 이 전쟁을 획책했다는 전제를 깔고 설계한 다리로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갈 수는 없고 더 큰 절망으로 건너가게 될 뿐일 것이다.

이 전쟁의 적은 내부에 있는 '부족주의 정치' 다.

세계주의는 부족의 내부를 세계화하자는 것이고 희망이란 경제가 정치에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는 DJ에게는 정치가로서 최후의 십자가가 될 것 같다.

십자가란 수형 (受刑) 의 고통이라기보다 택일 (擇一) 의 고통이다.

세계주의 경제냐 부족주의 정치냐, 이 둘 중에서 그는 택일해야 한다.

나는 그가 설계한 '고통분담' 이라는 이름의 '다리' 는 너무나도 정치적이고 부족주의적이라서 그것을 건너 세계주의 경제로는 다다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IMF 극복' 이란 말도 절망의 외침일 뿐 희망의 언어는 아닌 것으로 들린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붕괴로부터 부활하는 유일한 구체적 전략은 외국 자본으로 하여금 달러고 (高) 를 촉매로 삼아 우리나라 기업 (의 주식) 을 사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DJ가 내려야 할 택일이다.

달러고만으로 이 일이 이뤄질 수는 없다.

모든 경제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도록 일시에 개혁해야 한다.

지금이 이런 과격한 개혁의 적기다.

붕괴돼 있으므로 충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7백억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의 대외부채는 1천5백억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수긍할만한 액수가 증자참여 등을 통해 주식 등 자산 매입으로 전환될 때까지 제도를 개혁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 제도개혁의 혜택은 외국인 경제주체뿐만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

이것이 내부의 세계화다.

기업이나 소비자의 효율은 정부.언론.학계 어느 누구에게도 지도할 능력이 없다.

풍부한 시장 정보와 세계적 경쟁상태 만이 기업들을 효율의 길로 더듬으며 나아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5대 기업, 10대 기업의 효율을 지도할 필요는 없다.

다만 투명성 요건만 지키게 하면 된다.

그러나 투명성을 더 강제해야 할 대상은 기업보다도 5대, 10대, 30대 정치와 관료들일 것이다.

DJ시대는 한국의 세계주의 경제화 시대가 되길 바란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IMF시대의 바람직한 극복이 될 것이다.

강위석〈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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