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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환자’ 숨쉬고 피도 흘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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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노르웨이 회사인 라르달이 만든 마네킹 환자 ‘심맨(SimMan)’은 차량 충돌사고 때 마치 사람처럼 머리에서 피가 나고, 눈물도 흘린다. 응급처치를 위해 주사를 놓으면 약물에 반응해 동공이 확대되기도 한다. 심장 박동도 느낄 수 있다.

의료진이 마네킹 환자 ‘심맨’을 놓고 응급처치 훈련을 하고 있다. 심장 박동이 있고, 약물을 주사하면 동공이 확대되는 등의 반응을 한다①. 가상현실로 의술을 연마할 수 있는 시스템들. 마네킹이나 장기 모형, 가상현실 영상을 결합해 현실감을 크게 높이고 있다②③.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팀이 개발한 폐수술 훈련용 시스템은 마네킹에 폐 영상이 가상현실로 나타나도록 했다. 의학도들은 마네킹에서 실제 환자를 만지는 느낌을 받고, 가상현실로 만든 영상으로는 폐를 직접 들여다 보며 수술하는 듯한 감각을 익힐 수 있다. 기존 가상현실은 영상만으로 이뤄졌으나, 이 경우 손에 직접 마네킹이 잡히도록 함으로써 현실감을 한층 높인 것이다.

의료진의 응급처치와 수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한 마네킹 환자, 가상현실을 이용한 사이버 의술 훈련 기술이 이처럼 고도화하고 있다. 마네킹이지만 최대한 실제 환자와 흡사하도록,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내는 영상이지만 실제 의료 상황처럼 느끼도록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의술의 숙련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미국 학술원 산하 의학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의료사고로 해마다 4만4000~9만8000명이 사망할 정도다. 제대로 수술하고, 응급 처치했다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다. 그렇다고 환자를 놓고 의술 연마를 위해 연습할 수는 없다. 마네킹 환자, 가상현실 환자를 이용하는 이유다.

1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가천의대 길병원이 주최한 ‘가상현실과 의학의 융합’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세계 동향이 자세하게 소개됐다.

미국 햅티카사는 복강경 수술 훈련 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복강경 수술 훈련 시스템의 경우 실제 복부 안의 창자 등을 실물처럼 만들어 놓고, 가상현실 영상으로는 의사의 손놀림에 따라 수술 부위 영상이 바뀌게 해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 보통 가상현실로 영상을 보려면 특수 헬멧 형태의 안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햅티카의 복강경 훈련 시스템은 헬멧 없이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실제 수술하듯 한다. 장기를 절개하거나 꿰맬 때의 감각을 실제와 거의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가상현실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KAIST 박진아 교수는 가상현실을 이용해 임플란트 시술을 연마할 수 있는 가상 훈련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임플란트 시술 때 잇몸뼈를 알맞은 넓이와 깊이로 뚫을 수 있는 감각을 익히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가천의대 길병원, 에이알비전㈜도 공동으로 정맥주사 훈련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남녀노소별로 다른 정맥 상황에 맞게 훈련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주사 바늘로 정맥을 찔렀을 경우 주사 바늘이 피부를 통과할 때와 혈관에 들어갔을 때의 감각의 차이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박진아 교수는 “마네킹이나 가상현실은 환자의 상태를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훈련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가상현실(Virtual Reality)=소프트웨어로 만든 가상 공간에서 현실감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고소공포증이나 정신질환 치료에도 응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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