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호암미술관 '20세기의 미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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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0세기의 출구를 목전에 둔 1990년대 막바지에, 지난 세기의 미술을 함축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호암미술관의 '20세기의 미술' 전은 모더니즘의 교과서적 범례를 망라하고 있어 대중 '교육' 이란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을 다시 생각게하는 전시다.

현대미술사를 이끌어 온 추진력은 '추상' 의지였다.

그것은 미술이 '재현' 이라는 목표를 벗어나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은 두 갈래 길을 취했는데, 하나는 대상을 향한 시선을 주제로 돌리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물의 겉모습 너머로 시각을 연장하는 길이었다.

고흐에서 표현주의에 이르는 전자의 흐름에서는 내면의 정서를 표현하는 색채와 터치가, 세잔느에서 입체주의와 기하추상에 이르는 또 다른 흐름에서는 개념적 구조를 표상하는 형태가, 각각 순수 시각요소로 확립되었다.

회화표면은 원근법과 명암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체의 현존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주정적 경향과 주지적 경향이라는 이 두 주류가 낭만적 양식과 고전적 양식이라는 미술상의 큰 흐름을 반영하는 것임을 볼 때, 이것이 후기 모더니즘으로 지속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추상표현주의가 고흐의 표현적 제스처를 계승한다면 전후 기하추상은 세잔느의 분석적 사유를 잇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현대미술사 속에는 이런 흐름을 역행하는 충동, 즉 미술 고유의 성역에 대한 도전이 있어왔다.

1910년대에 기성품을 작품화한 마르셀 뒤샹을 선두로 1960년대에는 그 후예들이 출현하는 것이다.

팝 아티스트들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예술 안으로 끌어왔다면, 미니멀리스트들은 거꾸로 예술작품을 산업생산품처럼 만들었다.

비록 방향은 다르지만 삶과 예술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 공모자들이었던 이들의 의도는 최근의 미술에서 탈 (脫) 모던의 증표로 가시화된다.

미술작품이 창조된 시각적 형식이라기 보다 신체나 성, 또는 정치적 이슈를 담은 정보자료와 같이 된 것이다.

전시장을 나서는 모든 이들은 같은 질문을 떠올릴 것이다.

이제 미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 길은 우리들 모두의 삶처럼 불투명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길처럼 가보고 싶은 길도 없다.

호암갤러리 3월15일까지. 02 - 771 - 2381.

윤난지<교수.이화여대 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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