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이와 엄마를 함께 가르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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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신정초 풍경화반 엄마 선생님 김현이씨가 학생들에게 풍경화 그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미술을 직접 가르치는 게 처음이라는 김씨는 2시간 수업을 위해 2~3일을 준비한다. 백경미 인턴기자

9일 오전 10시 충남 아산의 온양신정초의 한 교실에서 학생과 학부모로 보이는 여성 20여 명이 글씨를 쓰고 있다. 학생은 그렇다 치고 학부모가 학생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사연인즉슨 이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학생이 같이 방과 후에 함께 수업을 듣는다. 종이 접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손 글씨도 배운다. 더 특이한 것은 이 학교에선 학부모들이 교사가 된다. 엄마가 자녀와 또 다른 엄마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학교는 지난 달 28일부터 매주 화요일 종이 접기, 금요일 회화디자인, 토요일엔 풍경화·예쁜 손 글씨반을 운영 중이다. 미술연구시범학교 온양신정초는 미술수업을 통해 학생에겐 ‘방과후 교육’을 엄마에겐 ‘평생교육’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수업은 학부모인 엄마들이 진행한다. 물론 교과과정을 마쳤거나 학원 등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는 ‘능력 있는 엄마들’이다. 엄마와 함께 미술수업을 듣는 학생도 적지 않다. 김명진(37·여) 온양신청초 연구부장 교사는 “강사가 엄마고 엄마와 함께 수업해 친근한 수업이 된다”며 “엄마는 학교에 오면서 교육적 환경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숨소리만 들리는 ‘예쁜 손 글씨 반’=두 번째 수업시간을 맞은 예쁜 손 글씨 반 수업. 교실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수업을 듣는 학생과 엄마 20여 명은 스케치북 위에 글씨연습이 한창이다. 교재에 쓰인 글씨를 보며 획 순대로 정성껏 한 획 한 획 집중했다. 엄마 선생님 이미순(39·P.ART공예문화센터)씨는 한 학생의 글씨를 보며 “‘ㅎ’을 너무 잘 썼는데, ‘ㅈ’은 직선으로 내려줘야 한다”며 시범을 보였다. 이씨가 가르치는 POP예쁜 손 글씨(Point of Purchase Revertising)는 요즘 유행해 홍보나 판촉물에 많이 쓰이는 글씨다. 학생들은 POP예쁜 손 글씨로 가족신문이나 미술작품을 꾸밀 수 있다. 평소 쓰는 글씨체와 다르고 귀여운 글씨체로 학생들의 흥미가 높다. 두 자녀와 함께 수업에 참여한 김영순(34·여)씨는 “딸이 먼저 함께 하자고 해 신청하게 됐다. 사교육비가 많이 드는데 무료라 더 좋다”며 “천천히 글씨 연습하는 것도 좋고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 하니까 좋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 이소현(10)양은 “엄마가 글씨를 잘 쓴다. 엄마와 함께 학교에 와 좋다”며 즐거워했다.

엄마 선생님인 이미순씨의 2학년 큰 아들도 엄마의 수업에 참여 하는 학생 중 하나다. 마침 이씨의 아들은 동생을 돌보느라 수업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씨는 “엄마가 학교에서 수업한다니 아들이 더 떨려 했다”며 “첫 수업 후에 엄마가 수업을 잘 한다며 아빠에게 자랑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쁜 손 글씨를 익힌 후에 폼 아트(Form Art)로 액자나 시계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쁜 손 글씨 배우는 학부모 김영순씨(右).

◆상상의 나래를 펴라 ‘풍경화 반’=“학교 다닐 때 이후로 그림은 처음이지만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즐겁고 학교에서 아이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풍경화반 수강생 엄마 김은주(35)씨. 김씨는 풍경화 반의 유일한 엄마 수강생으로 4학년 아들보다 더 열심이다. 이날은 여러 그루의 나무를 그려 원근감을 표현하는 수업이 진행됐다. 풍경화 수업을 듣는 노혜인(13)양은 “노는 토요일이라 더 자고 싶었지만 엄마 선생님이 부족한 부분을 잘 가르쳐주셔서 좋다”며 “풍경화를 제대로 배워 풍경화 대회에서도 상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풍경화 반 엄마 선생님 김현이(34·아산직업전문학교)씨는 학생들이 알아 듣기 쉬운 미술용어로 수업을 진행했다. 김씨는 교실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던 학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우선 연한 색으로 나무를 칠해주고, 다 마른 후 조금 진한 색으로 덧칠해줘야 한다”라며 그림을 봐줬다. 김씨는 그림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다. 김씨는 “평소 그림을 좋아했는데 좋은 기회라 시작하게 됐다”며 “학생들보다 내가 더 재미있고, 오히려 배우게 되는 게 많다”고 말했다. 임신 5개월째인 김씨는 “쉬는 날 학교에 와 수업으로 태교를 한다”며 “아이가 자랑스럽게 생각해줘 힘이 난다”고 뿌듯해 했다.

예쁜 손 글씨반과 풍경화반의 수업은 엄마들의 자원봉사로 이뤄지기 때문에 수강료가 없다. 재료는 학생이 준비하지만 비용은 부담이 갈 만큼 비싸지 않다고 한다.

백경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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