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앤 필링]'국민배우'의 허구성…스타에 대한 느낌은 주관적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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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람들은 더이상 극장을 신전으로 비유하지 않는다.

영화를 현대의 마지막 남은 제의 (祭儀) 로 묘사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럼에도 스타는 여전히 이 시대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감을 부린다.

“스타는 신과 같은 존재다. 모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존재다. 신의 무한한 공허는 또한 무한한 풍부함인데 이 풍부함은 신의 것이 아니다.”

세기말에 다시 돌아봐도 에드가 모랭의 스타론은 다소의 고루함을 상쇄시킬 만한 진실이 있다. 자기 동일시 메커니즘이나 문화 통합적 기능을 거론하기에 앞서 스크린이 재생하는 저 불사의 삶을 보라. 화면에 슬쩍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부드런 웃음, 장내를 오래도록 싸늘하게 만드는 야멸찬 언사, 그들이 사랑하고, 떠벌이고,다투고,헤어지고,배신하고,가만히 앉아있는 모든 태도를 카메라는 영구 봉인하고 영상은 영구 전시한다.

스타는 그 안에서 상상 속의 인간이자 현실 속의 인간이다. 불가사의한 꿈, 황홀한 주술, 거리의 선남선녀들을 모방의 욕망에 휩싸이게 하는, 손에 닿을 듯 만만한 위치에 놓인 일러스트다.

스타는 소박함조차 신화화하고, 스크린은 그 사치스런 신화를 '대중적으로' 고루 나누어주는 공평한 권력자다.다큐멘터리엔 스타가 없다.

스타는 극영화의 산물이다.인생이라는 드라마가 지상에서 홀연히 꺼지지 않는 한, 다른 인생을 만나고픈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이 마르지 않는 한 스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스타에 관한 신화도. 스타는 그러나 모랭의 지적처럼 신앙이 아니라 연기에서 탄생한다.

초창기엔 그랬다.이후엔 시스템이 스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연기를 빼고 스타를 논할 수는 없다.

연기를 평하는 것에 객관적인 잣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타가 우상으로 군림하는 현상은 사회적 객관적 범주에서 논할 차원이지만 연기 자체를 감식하는 건 대부분 주관의 범주에 속한다.

개인의 심미적이고 경험적인 느낌의 자각이 가치의 척도이므로 연기평은 자연히 수사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어떤 건 쓸쓸하고 어떤 건 아름답지만 어떤 건 전혀 아니다는 둥.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은 설명할 순 없어도 감으로 분명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 어찌하랴. 억울할지라도 연기자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신은 때로 자신의 피조물로부터 무수한 배반을 경험하나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말로 위안을 삼기를. '모래시계' 를 보면서 그 옛날 미국 여배우의 "부유한 노예" 라는 토로를 떠올린 건 나혼자였을까. 다른 점이 있다면 스튜디오라는 강박적 체제에 매여있는 대신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의 폼에 묶었다는 것이다.

저 지독한 자아도취, 감상벽!우리 영화의 스타는 누군가. 김승호는 60년대를 표상한 스크린의 얼굴이었다.

가파른 시대, 풋풋한 살림살이라는 모순을 그는 하나의 표정에 담아낸 명우다.

또 탁월한 조역의 허장강. 70년대 김진규의 사색적인 눈매를 다시 볼 수 없음은 안타깝다.

80년대 최불암, 이대근의 몰락도. 지금은 트로이카도 없다. 하나 바란다면, 안성기가 '국민배우' 라는 무지막지한 말에 눌리지 않고 더 자유로워졌으면, 경직된 안면 근육을 풀었으면….

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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