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이라크 공습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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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슬람교 이전의 아라비아에 '무나파라' 라는 욕설시합이 있었다.

무나파라는 싸워 이긴다는 뜻이다.

심판관과 중재자 앞에 두 집단이 나와 자신들의 명예를 높이고 상대방의 위신을 깎아내리는 치열한 욕설을 퍼붓는다.

가장 욕설을 잘한 쪽이 명예와 승리를 거둔다.

역사학자 호이징하는 전쟁도 놀이의 일부라는 관점에서 전쟁도 질서와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고대 전쟁에도 무나파라식 욕설부대가 있었다.

두 진영이 전열을 가다듬은 다음 욕설부대가 나선다.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상대방의 약점을 들추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욕설시합에서 지면 진영의 사기는 떨어지고 패색이 감돈다.

이튿날 시합에서 진 부대는 스스로 철수해 버린다.

중세까지 이런 식의 전쟁규칙과 질서가 지켜졌지만 현대에 이르러 전쟁의 낭만이 모두 깨졌다고 호이징하는 개탄했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연의' 에도 무나파라식 욕설장면은 자주 나온다.

'산골에서 베나 짜야 할 촌뜨기 오합지졸' 이라고 조조 (曹操) 는 유비 (劉備) 쪽을 욕한다.

'황실찬탈을 노리는 꾀많은 역적' 이라고 유비쪽은 맞받아친다.

'젖비린내 나는 아이' '이곳 저곳에 빌붙는 의리부동한 자' 등이 자주 등장하는 상대방 흠집내기의 단골메뉴다.

욕설시합이나 욕설부대가 생겨난 원인은 결국 명분쌓기에 있다.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명분있는 싸움에 명예롭게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외교.안보.국방을 책임진 세 사람이 'ABC' 3인방이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 코언 국방장관 이름의 두문자를 딴 별명이다.

이라크 공습이 임박했다는 시점에서 이들 세 사람이 한 대학체육관에서 미국 국민들과 대화모임을 가졌다.

왜 이라크를 공격해야 하나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쌓기 자리였지만 오히려 전쟁반대 구호에 묻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CNN방송이 전세계에 생중계한 자리였지만 효과는 별로였다.

이스라엘.인도네시아도 화생무기를 보유중인데 왜 이라크만 공격대상이냐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하지 못했다.

CNN과 USA투데이의 여론조사에도 68%가 평화적 해결을, 공습단행이 28%로 나타나고 있다.

이라크 공습론이 무나파라식 명분축적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이라크로 떠났다.

그의 중재역할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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