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언론 탓하지 말고 책임 있게 일하라” 수석들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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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탓하지 말라.” “책임지는 자세로 일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들을 이같이 질타했다. 중앙아시아 2개국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오후(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시내에 있는 조국 수호자 기념비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아스타나=연합뉴스]


참석자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수석들에게 “모든 일이 자기 책임하에 있다고 생각하고 일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말고 탓도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언론의 비판을 왜곡 보도로 몰아가려 하지 말고 겸허하게 수용하고 책임 있게 대처하라는 주문이었다. 정부 부처 간 혹은 당정 사이에서 빚어진 정책 혼선에 대한 비판 보도가 잇따르자 최근 일부 참모가 “언론이 사소한 갈등을 과도하게 보도한다”고 반발하고 나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질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개별 수석실을 하나하나 짚으며 조목조목 잘못을 지적했다고 한다.

우선 교육과학문화수석실에 대해서는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유엔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 낙선 문제를 거론했다. 오 사장은 정부 권유로 지난 7일 아프리카 말리에서 열린 선거에 출마했고,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파견해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하지만 오 사장은 10개국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쳐 낙선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지원 적임자를 보낸 게 맞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문광부 제2차관에서 막 자리를 옮긴 신 차관이 대표단을 이끌게 한 조치가 과연 적절했느냐는 물음이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7일 해외봉사단 통합 발대식 행사를 주관했던 청와대 홍보라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한다. 홍보라인은 당초 이 행사에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를 초청하겠다고 했다가 “김 선수와 해외봉사가 무슨 상관이냐”는 내부 비판이 제기되자 해외 구호 전문가 한비야씨로 바꿨다. 이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며 참모들의 ‘일머리 없음’을 지적했다고 한다.

민정수석실의 일 처리도 도마에 올랐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지난달 경기도 안양에서 발생한 교사들의 여대생 교생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이 대통령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의 수위와 강도가 평소보다 강경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나기 전, 수석들에게 특별히 꼼꼼한 업무 처리를 당부하기는 하지만 6일 회의는 이런 점을 감안해도 분위기가 무척 무거웠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최근 일부 참모에 대해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모들의 일 처리에 불만을 가진 이 대통령이 작심하고 수석들을 질타한 것이란 얘기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과 29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연달아 “청와대는 사후 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조율을 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 발언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가입,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 등을 놓고 정책 혼선이 빚어진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됐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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