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으로 세상보기

자연은 인간의 스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식물들은 인간처럼 매일 세수하거나 목욕하지 않아도 깨끗하다. 심지어 진흙탕 연못에서 자라는 연꽃이나 연잎도 눈부시게 깨끗하다. 어떻게 이들은 그 같은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초 독일 과학자들은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여러 식물의 잎 표면구조를 조사한 적이 있다. 연구를 시작하기 전 과학자들은 잎 표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연구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연잎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해 보았더니 잎의 표면은 무수히 많은 솜털과 미세한 바늘로 덮여 있었다. 과학자들은 연잎 위에 떨어진 먼지가 솜털 위에 얹혀 있다가 떨어진 빗방울이 연잎 위를 구르면서 씻겨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연잎의 표면구조를 모방해 건물 벽에 바르면 세척하지 않아도 연잎처럼 항상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페인트를 개발했다. 현재 독일에서 시판되는 이 페인트는 세척하지 않아도 5년간 청결함이 유지되는 것을 보증한다. 생명체의 구조나 디자인을 산업적으로 모방한 하나의 예다.

생명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도 현명한 방법으로 만들어 낸다. 거미는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질기며 인간이 만든 어떤 고무.섬유 제품보다 훨씬 유연성이 큰 실을 뽑아낸다. 홍합이나 따개비는 거친 파도나 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바닷가 바윗돌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데 사용한다. 전복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조개껍질을 만들면서 인간의 도자기 제품보다 더 튼튼한 세라믹을 만든다. 생명체들은 인간사회의 공장처럼 고온에서 끓이거나 삶거나 굽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온에서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 특별한 기술을 터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생명체들은 공해를 유발하지 않는다. 이들은 또 적은 양의 에너지로 물질을 생산하면서도 인간이 생산하는 것보다 월등한 제품을 만든다.

생명체들은 특수한 구조를 지니거나 독특한 물질을 만들 뿐 아니라 공생과 협력을 통해 매우 효율적인 조직을 구성하기도 한다. 교목림 숲 생태계는 그 같은 조직의 대표적인 예다. 교목림 숲 속에선 모든 것이 재활용돼 낭비되거나 버려지는 것이 없다.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풀.이끼.곤충.새.동물.박테리아들은 고도로 효율적인 재활용 조직을 통해 한 생명체가 방출하는 쓰레기를 다른 생명체의 식량자원으로 만든다. 또 숲 속의 생명체들은 자신들이 먹고 자고 숨쉬고 생산 활동을 하는 공간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한다. 이들은 인간처럼 자신이 사는 공간을 오염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생명체들은 인간이 항해술이나 항공기술을 발전시키기 훨씬 전부터 대양을 횡단하고 하늘을 나는 법을 알아냈다. 현재까지 인간이 살지 못하는 고산지대나 깊은 바닷속에서 사는 법도 터득했다. 자연이 이처럼 인간보다 현명한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자연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지구상에 출현해 인류가 현재 직면한 환경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더 큰 규모의 환경문제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38억년에 걸친 장구한 기간에 실험과 연구.개발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을 터득했다. 일부 실패한 연구개발은 멸종이나 화석화로 이어졌지만 살아남은 개개의 생명체는 그 자체가 각종 환경적 재앙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해답들이다. 이들이 지니는 구조, 이들이 만드는 물질, 이들이 협력하고 공생하는 조직 등은 이들보다 훨씬 뒤늦게 지구상에 출현한 우리가 건물을 짓거나, 먹을 식량을 생산하거나, 상품을 만들거나 효율적인 사회조직을 꾸밀 때 겸허하게 배워야 할 것들이다.

탁광일 캐나다 생태학자

◇약력 : 고려대 임학과 졸업,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박사 (임학전공), 미국 School For Field Studies 캐나다 센터 교수, 환경교육 및 임업 컨설턴트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