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3년내 218조 생산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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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는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 이봉주 선수의 다리 근육이 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TV를 통해 여론조사도 하고 홈뱅킹과 홈트레이딩도 가능해진다. 2000년부터 4년간을 끌어오던 디지털TV(DTV) 전송방식 논란이 끝났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노성대 방송위원장, 정연주 KBS사장,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 등 '디지털TV 4인 대표위원회'는 8일 전송방식을 현행 미국방식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TV를 보는 경우에는 유럽식에 기반을 둔 지상파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도입키로 했다. 집 TV에는 미국식을, 이동 TV에는 유럽식을 적용한 것이다.

◇내 고향에선 언제 볼 수 있나=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등 5대 광역시는 8월 말 안으로, 각 도청 소재지에서는 올해 말께 디지털방송이 시작된다. 이때쯤이면 전체 인구의 80%가 디지털방송 시청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수도권에서는 2001년 10월부터 방송되고 있다. 내년 말까지는 시.군 소재지 주민들도 시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동하면서 보는 지상파DMB는 연말께 가능할 전망이다.

◇생활패턴이 바뀐다=디지털TV 화질은 아날로그 화질보다 5배 정도 선명하다. 업계 관계자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쳐다보는 것 같은 수준의 화질"이라고 말했다. 5.1채널(5개의 대형스피커와 1개의 소형스피커)에 적용되는 수준의 입체음향 감상도 가능해진다. 집에서도 극장에서 영화 볼 때와 같은 수준의 음질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쌍방향 방송이 가능해진다. TV를 시청하면서 쇼핑을 하거나 관련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하고 시청률을 실시간으로 집계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나 가능했던 전자상거래 기능도 구현한다. TV홈쇼핑에서 상품을 고른 뒤 전화로 주문하는 절차가 없어지고 TV화면에서 원하는 제품을 선택함으로써 원스톱으로 주문이 이뤄진다. 기존 아날로그 방송은 방송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송출하던 것에 그쳤다.

디지털TV의 구입가격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전송방식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분리형 디지털TV 구입시 80만~100만원에 이르는 수신기(셋톱박스)를 따로 구매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TV 안에 수신기가 내장된 일체형 제품이 주종을 이룰 전망이다. 분리형 디지털TV는 29인치 브라운관 LCD의 경우 80만~100만원, 보급형 프로젝션TV 42~45인치의 경우 200만원선이다.일체형은 이보다 30~40% 비싸다.

◇업계 내수부진 탈출 호기=관련 업계는 물론 침체된 내수시장 전반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디지털TV 수상기뿐 아니라 디스플레이.반도체.소프트웨어.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지난해 말 2007년까지 7600억원을 투입, 디지털TV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통부는 계획대로 세계 디지털TV 시장 점유율 30% 달성이라는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2007년까지 디지털TV 생산 23조원, 수출 137억달러, 생산유발 218조원, 고용창출 108만명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채널=현 아날로그 방식의 경우 제한된 주파수 때문에 한 지역에서 6개의 채널만 운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되면 채널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동방송의 경우 30개 남짓의 채널이 가능하다. 방송시장의 변화도 예상된다.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송종길 박사는 "선진국에서는 '신문.방송.통신의 겸영이 가능해진 지 오래며, 방송시장 진입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며 "우리나라도 이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DTV.DMB=DTV는 디지털 방식으로 보내온 영상과 음성을 화면에 나타내는 고화질 TV를 말한다. 방송국은 제작.편집.송수신 등 모든 단계에 필요한 영상과 음성을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고 이를 압축해 전송한다. DMB는 고품질의 음성과 영상을 휴대전화.개인휴대단말기(PDA) 등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이동멀티미디어 방송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이현상.이상복.박혜민 기자

[미국식으로 결정까지] 지루한 논쟁…4년 만에 매듭

논란이 끝나는 데 꼭 4년이 걸렸다. 정부는 '디지털 강국'을 향해 일찍 출발선을 떠났지만 전송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발목이 잡혔다. 지난해 말부터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 일정은 중단됐다. 올 초에는 방송사 노조 측이 '파업' 운운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8일 극적으로 지루했던 논쟁이 끝나고 "디지털 앞으로"를 외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격렬했던 지난 4년=전송 방식이란 '방송 프로그램을 방송국에서 수신기에 전달해 주는 기술규격'으로 정의된다. 정통부는 1997년 이 방식을 화질이 뛰어난 '미국식'으로 결정했다. 2001년엔 SBS를 필두로 서울.수도권에서 디지털 방송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까지 광역시, 올해 말까지는 도청 소재지로 서비스가 확대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MBC를 중심으로 한 방송노조. 언론 관련 시민단체가 "유럽식이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하다"며 반발하기 시작했다. 2000년 7월부터 가시화한 반발은 지난해 말 '파업 불사론'으로까지 번졌다.

정통부와 방송위원회가 해법을 찾겠다며 지난해 말 각계 대표로 선정된 해외조사단을 파견해 8개국을 돌아다녔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광역시 디지털 전환 일정은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정통부.방송위.KBS.언론노조가 올 초 미국식.유럽식에 대한 비교시험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실마리가 보였다. 서로 다른 입장을 조금씩 좁혀갔다.

언론노조 측은 이날 "정책 변경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 교훈으로 삼아야"=이날 결정에 대해 "비교 시험이 이뤄지지 못한 건 유감"(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이란 반응도 있지만 대부분은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방송 3사는 서둘러 디지털 전환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이번 일을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가 어렵게 정부와 합의한 것에 대해선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정책 자체를 흔드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정부도 정책을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박천일 교수는 "무한 국제경쟁 상황에서 뉴미디어 시장은 선점 효과가 중요하다"며 "일부 노조가 '자기 논리'를 개발해 신규 사업에 발목잡기식의 행동을 하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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