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 석유·천연가스 잡아라 … 러시아 - 서방 ‘파이프라인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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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 지역에서 러시아와 서방 간의 ‘파이프라인 전쟁’이 뜨겁다. ‘제2의 중동’으로 불리는 이 지역의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를 자기 쪽에 유리한 루트로 운송하기 위해 송유·가스관 건설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카스피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안정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러시아를 우회하는 송유관을 운용하는데 이어 러시아를 거치지 않는 새로운 가스관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국 파이프라인을 옛 소련권인 카스피해와 중앙아시아 지역 에너지 자원 통제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이에 질세라 러시아도 독자적인 가스관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서방 주도 가스관 ‘나부코’=유럽연합(EU) 대표와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이집트 정상들은 8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회담을 열고 나부코(Nabucco) 가스관 추진 협정에 서명했다.

나부코는 카스피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러시아를 우회해 유럽으로 공급하려는 가스관이다. 카스피해 연안에서 출발, 터키와 불가리아를 경유해 오스트리아로 연결되는 길이 3300㎞의 파이프라인이다. 건설비만 1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카스피해 연안국은 물론 이란이나 이집트의 가스도 이 노선으로 운송할 계획이다.


정상들은 협정문에서 몇 년 동안 논의 단계에 머물렀던 가스관 건설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나부코 사업이 탄력을 받은 것은 러시아의 유럽행 가스관 차단 조치로 거의 매년 유럽 국가들이 가스대란을 겪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러시아의 에너지 통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유럽은 전체 가스 소비의 25%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도 나부코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 주도 가스관 ‘남부 스트림’=러시아는 나부코에 맞설 독자 가스관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의 흑해 연안에서 출발해 불가리아를 거쳐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최대 3200㎞의 남부 스트림(South Stream) 건설 프로젝트다. 러시아는 카스피해 연안국의 가스를 일단 자국 영토로 끌어들인 뒤 이 가스관을 통해 유럽으로 수출하겠다는 계산이다. 130억 달러의 사업비를 투자해 2013년 완공할 계획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지난달 말 남부 스트림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불가리아의 세르게이 스타니셰프 총리를 모스크바로 초청해 사업 참여를 촉구했다.

나부코 가스관에도 참여 제의를 받고 있는 불가리아를 러시아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러시아는 또 나부코 가스관의 주요 가스 공급국으로 서방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을 남부 스트림에 참여시키려는 설득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

◆송유관도 경쟁=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2005년 카스피해 원유를 러시아 송유관을 거치지 않고 서방으로 운송하기 위해 독자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바쿠(아제르바이잔)-트빌리시(그루지야)-세이한(터키)을 연결하기 때문에 BTC 라인으로 불린다.

이 송유관은 카자흐스탄 석유를 흑해로 실어 나르는 러시아의 CPC 송유관의 대항마로 건설됐다.

아직은 주로 아제르바이잔 원유를 수송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론 카자흐스탄 원유를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카스피해 해저에 BTC와 연결되는 송유관을 건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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