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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당선자 '대기업 대폭정리론'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17일 당 세미나에서 '대기업 대폭정리론' 을 꺼내 그 진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력사 위주의 그룹 개편론' 은 언뜻 보면 새삼스럽지 않다.

金당선자는 대선 이후 그룹 총수들을 만날 때마다 줄곧 핵심 주력사업 위주의 그룹재편을 주문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4대그룹 총수와의 회동 뒤 설정된 재계 개혁 5대 가이드라인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발언은 그동안의 수위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3~4개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정리하라" 는 얘기대로라면 재벌로 불려온 한국 대기업그룹 시스템은 전면 개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점이 미묘했던 것도 한몫했다.

金당선자가 15일 김용환 (金龍煥) 비대위 대표를 일부러 불러 30대그룹이 제출한 구조조정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난지 이틀째다.

더구나 金당선자는 제출마감 시한인 14일 저녁엔 金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모두 제출했느냐, 내용을 개략적으로라도 보고해달라" 고 채근, 비대위 공식 보고 (16일) 하루전에 재계 자율개혁안을 들여다봤다.

그만큼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자연스레 이날 발언은 "검토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방증" 이라는 해석이 퍼졌다.

이에는 16일 비대위의 대그룹 구조조정안 평가회의 분위기도 가세했다.

金당선자는 金대표에게 몇가지 지침을 내렸고, 비대위는 이 지침을 토대로 평가에 착수했던 터였다.

비대위의 공식발표에는 자연히 金당선자의 의중이 짙게 녹아들게 돼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발휘했던 게 사실. 일부 위원들이 "경제 비상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탄생된 비대위가 몇개 그룹에 끌려다니겠느냐" 며 강한 불만감을 표출한 것도 보기에 따라선 金당선자가 비대위원의 입을 빌려 자신의 심경을 전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에선 그동안 나타난 재계 개혁작업이 金당선자측을 매료시킬 만큼 화끈하지 않아서 생긴 불만이 폭발했다는 관측도 나왔다.

4대그룹 총수와 만나 개혁의 기본방향을 합의 (1월13일) 한지 한달이 지났다며 "지난 정권들처럼 출범 초기의 서슬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는 지적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일부 그룹이 순수지주회사 설립 전엔 회장실.기조실 폐지가 어렵다고 버티는가 하면, 99년말까지 상호보증을 해소키로 해놓고도 그룹 총수들이 신규대출 전환요구를 한 것도 새 정부측의 심사를 날카롭게 자극했다.

하지만 발언에 대한 해석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金당선자 최측근들이 진화작업에 나섰다.

박지원 (朴智元) 당선자대변인은 "앞으로 문어발식.선단식 경영은 어려울 것이라는 원론적 발언을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고 공식 해명을 내놓았다.

비대위 핵심 관계자들은 " (정리하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즉 '정리' 란 말은 비슷한 사업부문은 합병을 통해 합치고, 수익성이 떨어지면 잘라내는 방식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는 얘기다.

이날 발언은 그동안 주장해온 '핵심부문 주력, 비주력 부문 정리' 의 연장선상에 서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재계의 개혁안이 구체적이지 않고 추진일정도 명확하지 않자 구조조정 촉구 강도를 한껏 높이려 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金당선자의 한 측근은 "자동차.반도체 등 그룹 주력사업이 죽느냐, 사느냐는 판에 비주력사업을 어떻게 지금처럼 챙겨줄 수 있느냐. 어차피 재벌 계열사중 돈을 버는 곳은 많아야 7~8개, 적게는 3~4개에 불과하지 않으냐" 고 반문하고 있다.

남정호.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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