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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파적'의 컬트성 읽기…열린 예술향한 상상력 품앗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미칠 수 있는 사람만이 미친다.

현실은 춥고 배고프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것에 미칠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과 열정을 갖지 못한 다수 사람들에겐 분명 부러운 일이다.

그런 이들에겐 미래의 불투명함마저 '가능성' 일 테니까. 20대 젊은이들이 겁없이 뭉친 '지하창작집단 파적 (破寂.02 - 324 - 8220)' .지난해 11월말 열린 제4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으면서 등장했다.

모여서 활동한 건 3년이 넘었지만 정식으로 홍대 부근에 활동공간을 마련한 것은 넉달 가량 됐다.

현재 활동인원은 7~8명. 숫자는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여느 동아리처럼 가입.탈퇴 등으로 유동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안에 따라 신축성 있게 모였다 흩어지는 '프로젝트 그룹' 이기 때문. “말하자면 '품앗이' 를 하는 겁니다.

문화예술에 관심과 특기를 가진 구성원들이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각자의 분야에서 기여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이름에도 특정장르를 표시하기보다는 '창작집단'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엄마의…' 의 각본.감독.기획을 맡았던 김정구 (29) 씨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들의 일성 (一聲) 이 영화가 된 이유가 분명해진다.

“영화가 문학.음악.미술.연기.연출 등 우리가 관심있는 분야를 모두 포괄하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구성원들의 활동분야는 복잡.다양하다.

김정구씨는 대학 때 그림을 그렸고 꾸준히 글을 쓰며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다.

'아들의 연인' 역 말고도 '날 내버려둬' 라는 주제가를 작곡.연주하고 직접 부른 김일안 (29) 씨는 '플랫 (♭) 폼' 이라는 밴드에서 수년간 기타리스트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이 '협동농장' 사람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건 퍼포먼스 개최다.

“특정한 형태가 아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장 (場) 을 마련하는 겁니다.

연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거기서 밴드 공연도 하고…. 통일된 이미지 아래서 장르 간에 존재하는 진입장벽을 허무는 거죠.” 선뜻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이 퍼포먼스를 자신있게 구상할 수 있는 건 참신성을 보장할 '상상력' 이라는 위력적인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줄거리는 어떨까”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까” 는 식의 대화가 일상화돼 있다.

누군가 제안을 하면 나머지는 모니터를 해주고 이것이 구체적으로 발전하면 각자 관련된 부분을 도와주는 식이다.

한 심사위원이 “퇴폐상 (賞) 이라도 줘야겠다” 는 농담을 했을 정도로 파격적인 모자 (母子) 상을 보여준 '엄마의…' 의 예상을 뛰어 넘는 발상 역시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파적' 은 외양상 “돈은 없고 의욕만 충만한” 모임이다.

영화제 상금으로 간신히 차기작 '민들레' 를 찍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했다.

“실제 우리가 손에 쥔 돈으로 찍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시나리오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는 이들의 말이 그러고 보면 엄살이 아니다.

흔히 기발한 착상은 궁여지책을 찾는 와중에 전광석화와 같이 나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상상력마저 현실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면 어쩐지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긴 역경 속에 예술이 꽃피길 바라는 이들이 어디 '파적' 뿐이랴마는.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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