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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투자 막는 한심한 행정]中.공무원 콧대부터 낮춰야(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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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 (제노포비아) 이 이토록 심한 곳에 누가 투자하겠습니까. 외국자본에 배타적인 한국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다우코닝의 사례처럼 외국투자가는 한국에서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지난해 상공의 날에 모범적인 외국투자기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한국 BASF의 아드리안 폰 맹거젠 사장의 말이다.

한국 정부의 늑장행정, 걸핏하면 발목을 잡는 거미줄 같은 행정규제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미국무역대표부 (USTR)가 지난해 내놓은 연례 보고서에서도 “수입품반대운동이야말로 한국에서 당면하는 중요한 무역장벽” 이라고 지적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AMCHAM) 관계자도 “한국 내에서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한국국민과 공무원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외국인 혐오증” 이라며 “한국정부가 외국인 투자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제대로 홍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 이후 더욱 불거진 외국자본.상품 배격 움직임은 외국투자가들의 투자의욕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기업 대표는 “한국에 오래 머물수록 기업할 맛이 떨어진다” 고 잘라 말했다.

그는 “IMF사태 이후엔 신변 불안까지 느낀다” 고 털어 놓았다.

그는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벤츠를 몰고 가던 한 여인이 신호대기 중 '너 같은 사람 때문에 나라가 이꼴이 됐다' 며 행인에게 폭행당했다는 말이 사실이냐” 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럽상공회의소의 후고 라이머스 (맨 B&W 코리아사장) 부회장도 “내 고향인 덴마크에서도 국산품 애용운동이 있지만 외제품 배격운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면서 한국 분위기를 못마땅해 했다.

잘못된 투자행정 풍토도 외국인 투자의 대표적 장벽으로 거론된다.

“도대체 한국공무원과는 얘기가 안 통한다.

잘 만나주지도 않지만 만나도 딱 부러진 설명이 없다. 게다가 영어도 잘 못해 통역을 써야 하니 깊은 논의를 할 수 없다.” 최근 한국 투자를 검토하다가 결국 포기한 한 외국기업 대표의 얘기다.

한국외국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외국투자에 대한 공무원사회의 무관심과 폐쇄성도 지나치다” 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엔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안내책자 하나 변변한 게 없다” 면서 “영국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필리핀조차 투자청을 방문하면 원색화보로 꾸민 상세하고 풍부한 여러 투자안내 책자를 쉽게 얻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도 정부부처는 외국인 투자기업체 명단을 '대외비' 로 취급할 정도로 폐쇄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고 지적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이런 지적을 상당부분 인정한다.

외국인투자를 담당하는 한 정부 실무자는 “일반 외국기업인이 방문하면 일단 사무관 선에서 만나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특별히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국장급 이상 고위간부는 체면문제 때문인지 만나지 않으려 한다” 고 밝혔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려면 모두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게 외국인들의 지적이다.

이재훈·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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