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헤이그 국제입양협약 가입을 촉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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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역경을 딛고 무역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지금도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시키는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통계상으론 2007년 국내입양 건수가 해외입양을 앞질렀지만, 한국이 헤이그국제사법회의에서 채택된 1993년 국제입양협약의 미가입국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협약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정하고, 국제협력체제를 확보해 국제입양이 적법절차(due process)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하며, 입양의 효력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가입 상태에서는 파행적인 친자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입양협약 가입은 우리도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요구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 협약의 가입국은 주로 아동을 내보내는 국가들이었으나 그후 수령국들도 가입했다. 그동안 정부는 우리 아동의 최대 수령국인 미국의 미가입을 이유로 가입을 미뤘지만, 현재 미국 등 78개국이 가입한 이상 이는 정당화될 수 없다. 협약은 이제 국제적인 컨센서스일 뿐만 아니라 그 타당성이 검증된 셈이다. 협약 미가입은 협약과 국제사법(國際私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지와 오해에서 기인한 것으로, 우리 사회와 국가의 총체적 직무유기일 뿐이다. 필자도 책임을 통감하며 부끄럽게 생각한다. 분명히 지적하거니와 협약 가입은 해외입양을 촉진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동권리협약과 동일하게 입양협약은 우선적으로 아동이 출생가족과 출신국의 보호 아래 머무를 수 있도록 각국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서, 해외입양은 그것이 불가능한 때 아동에게 안정된 가정을 제공하는 최후 수단임을 명시한다. 우리 아동의 해외입양이 지속되는 한, 또한 장래 우리가 외국아동을 받아들이게 될 경우 그것이 1년에 비록 단 1건이더라도 정부는 입양이 적법절차에 따르도록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매년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시키는 국가가 협약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부는 협약에 조속히 가입하고, 그 밖에도 아동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낯선 네덜란드인의 품에 안겨 조국을 떠났다가 7년 뒤 홍콩에 유기돼 세인의 주목을 끌었던 2007년 제이드 양 사건의 재발도 막을 수 있다. 국민을, 그것도 어린 아동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가 무슨 국가란 말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 가입 권고를 했으나 별 진전이 없다. 조속한 협약 가입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특히 협약상 중앙당국의 역할을 해야 할 보건복지가족부가 협약 가입은 가족법과 국제사법은 물론 인권법의 과제임을 명심하고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민법 개정에 의해 2008년부터 친양자제도가 도입됐으므로 장차 해외입양 시 이주 전에 법원의 입양재판을 받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념할 것은, 협약 가입은 기존 해외입양제도의 전면 개편을 수반하므로 신제도가 안착하도록 가입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쪼록 조속한 시일 내에 가시적인 조치가 취해져 내년에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양의 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석광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