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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두 거인, 우정·스킨십으로 사로잡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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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3면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카리모프(우즈베크·왼쪽), 13일 나자르바예프(카자흐·오른쪽) 대통령을 각각 만난다. 위 그래픽은 청와대 제공 사진을 합성해 만들었다.

‘우정과 스킨십 그리고 문화’.

이명박 대통령,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방문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하 우즈베크·카자흐)을 정상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컨셉트다. 중앙아시아의 두 거인인 이 두 나라를 그동안처럼 ‘석유 창고’가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관계를 정립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무엇보다 방문 비중이 격상됐다. 지금까지 우즈베크·카자흐는 러시아를 오가는 길에 들른 종속 변수였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모두 중간에 방문했다. 외교통상부 김은중 유럽국장은 “두 나라와의 강한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새 컨셉트에는 새로운 자세가 담긴다.
이번 방문에는 ‘정상 간의 우정’이라는 감성적 터치가 깔려 있다. 첫 방문지 우즈베크에서는 우정을 깊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나라는 이미 전략적 파트너일 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부터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과 우정을 나눠왔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극진한 환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 타슈켄트공항 주변과 숙소로 가는 길에는 이 대통령의 웃는 얼굴 사진과 함께 ‘환영합니다’라고 한글·우즈베크어로 쓴 대형 간판이 들어섰다. 우즈베크 현지인은 “러시아에서 푸틴이나 메드베데프가 와도 해주지 않은 대접 같다”고 했다.

9일 타슈켄트 공항 앞에 걸린 이 대통령 환영 간판.

그리고 말미를 사마르칸트 방문으로 장식한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 강국(康國)으로 표기된 사마르칸트는 고구려 후예이면서 당나라의 장군이 된 고선지가 751년 탈라스전투에서 패한 뒤 종이가 최초로 전파된 유명 관광지다.

그러나 카리모프 대통령이 직접 안내할 이 방문은 단순 관광이 아니다. 사마르칸트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고향이며 실크로드가 지나가던 과거 우즈베크의 중심지다. 카리모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자신의 고향이자 친구 나라의 자부심인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실용 외교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이 반나절이나 걸리는 이 행사에 가는 것 자체가 우정을 깊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카리모프 대통령은 두 정상의 사마르칸트 방문을 수행하는 ‘영예장관’으로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총리를 지명해 우정의 격도 최대로 높였다.

카자흐에서는 훈장으로 그동안 조금은 아쉬웠던 정상 간 우정의 격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서울을 이미 세 번씩 찾았지만 우즈베크 대통령과 달리 아직 한국 훈장이 없다.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훈장 교환식을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의 무궁화훈장에 버금가는 최고 훈장이 서로 수여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당신은 나의 형제와 같다’는 개인 메시지도 전했던 두 사람이 지난해 8월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다.

훈장으로 형식을 갖춘 우정은 스킨십으로 내실을 다진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사우나 단독 만남 형식으로 ‘사나이 스킨십’을 제의했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러시아식 사우나는 한국 사우나와 다르다. 한국은 여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땀도 빼고 몸도 씻는 대중식이다. 카자흐 사우나는 찜질방과 휴게시설이 들어 있는 단독 대형 펜션으로 보면 적당하다. 사우나실의 뜨겁게 달궈진 돌에 뿌린 물로 뜨거운 증기를 일으켜 땀을 뺀 뒤 샤워를 하거나 풀장에서 몸을 식히고, 휴게실에서 차와 음료를 하며 쉬는 식이다.

사우나엔 중요한 상징이 들어있다. ‘베닉’과 ‘두드림’이다. 땀을 뺄 때 자작나무 가지와 잎묶음으로 만든 ‘베닉’으로 상대의 등과 배 등 몸을 찰싹찰싹 때려 땀이 빨리 나오게 한다. 두 정상이 뜨거움 속에서 땀내기를 도와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그건 최고의 우정만이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사우나에서 두 정상은 단독으로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다”며 “일상 외교로 안 되는 정상 외교의 힘이 발휘되는 현장”이라고 했다.

우즈베크 스킨십은 세계경제외교대학 대학생들과 나눈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즈베크 젊은이들이 『신화는 없다』를 쓴 이 대통령처럼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과 정치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이 대통령의 높은 인기 자원으로 젊은이들과 스킨십을 나누고 네트워킹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스킨십은 MB 외교의 특색”이라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도 이 대통령의 스킨십을 매우 좋아하고, 2008년 6월 1일 중국 쓰촨 지진 때 현장을 찾아 피해 주민과 고통을 함께한 것도 중국 지도부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문화다.

외교부 김 국장은 “중앙아시아에서 에너지만 찾지 말고 문화·교육 교류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며 “멀리 떨어져 있는 양측 국민들이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계기를 만드는 것도 이번 방문 목적의 하나”라고 했다. ‘석유, 석유…’만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문화를 통해 서로가 가까워지면 기회가 더 올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란 것이다. 청와대가 작가 황석영씨를 방문단에 초청한 것도 그런 인식의 연장이다.

우즈베크와 카자흐에는 현지 지상파방송이 장보고·대장금 같은 드라마를 몇 번씩 다시 트는 한류 열기가 있지만 ‘일방적 흐름만 즐기지 말고 현지 문화를 한국에 가져와 소개하는 게 건강한 관계에 도움된다’는 시각도 강하다. 한국 문화의 일방적 소개보다 상호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문화관광부·지식경제부·외교통상부와 공동으로 15일부터 우즈베크·카자흐·투르크메니스탄 예술인 50여 명을 초청, ‘비단의 향연’ 축제를 여는 것도 ‘소통’의 중요성을 이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챙기기는 당연한 과제다. 그러나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카자흐·우즈베크와는 지금까지 수백 개의 협력 프로젝트가 합의됐지만 진전이 없는 것도 꽤 있다”며 “이번 정상 방문에서는 내실을 다지는 방안이 먼저 논의될 것”이라고 했다.

우즈베크에서는 ‘수르길 가스전 개발과 가스 화학 플랜트 사업’을 다진다. 우즈베크 북서 아랄해 인근에 있는 예상 매장량 8억3000만 배럴의 가스전을 본격 개발하기 위해 우즈베크국영가스공사(UNG)와 한국수출입은행·수출입보험공사 간에 향후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 대출과 보증 양해각서를 체결한다. 예상 투자비는 30억 달러다. 또 카리모프 대통령의 0순위 사업인 나보이공항 국제물류 허브 사업에 크레디크 라인 설정 협정도 체결한다.

카자흐에선 3월 삼성물산·한국전력의 컨소시엄과 카자흐 삼룩 에너지 사이에 서명된 발하시 석탄화력 발전 건설을 위한 주식인수계약이 체결된다. 카스피해 북서부 잠빌 광구 개발을 위한 공동운영회사 설립 및 탐사사업 추진과 관련된 협정이 서명된다. 모두 ‘새것을 탐하지 않고 내실을 다지는’ 실무 작업이다. 물론 유전을 확보하는 합의도 있다.

다만 카자흐에는 좀 더 신경을 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카자흐와의 관계를 우즈베크와 같은 전략적 파트너 수준으로 격상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유럽과 미국 등 큰 나라만 상대하며 ‘뜻밖에도’ 한국을 낮춰봤던 카자흐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는 그런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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