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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 ‘참새의 추억’이 10년 뒤 홍위병 완장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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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33면

시민들이 인작대전의 전리품을 들고 4해(害) 전람회장으로 향하고 있다. ‘하루 전과(一日戰果)’라는 문구가 이채롭다.

1955년 한 농민이 “참새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는 탄원서를 중앙에 보냈다. 농업부는 동물 연구의 권위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참새의 식성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한 적이 없다. 박멸이 필요한지 감히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12>

그러나 며칠 후 마오쩌둥의 입에서 “12년 내에 전국의 쥐·참새·파리·모기를 소멸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4해(四害)라는 용어가 처음 출현했다. 2년 후 한 회의석상에서 “4해를 소멸시킨 후에라야 위생을 강구할 수 있다. 내년 봄에는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재천명했다. 전국문련(文聯) 주석 궈모뤄(郭沫若)는 동작이 빨랐다. “수천 년간 우리의 양식을 수탈하며 저질러 온 죄악, 이제야 관계를 청산할 때가 왔다”며 참새들에게 선전을 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새를 규탄하는 시(詩)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물학자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 참새의 편을 들었다간 기상천외한 봉변을 당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베이징시는 ‘참새 섬멸 총지휘부’를 신설했다. 디-데이는 58년 4월 19일이었다. 새벽 4시부터 노동자·농민·간부·학생·군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빗자루·몽둥이·장대·봉걸레·회초리 등을 지참하고 숨을 죽였다. 유혹섬멸구로 선정된 830개 지역에 독극물이 든 과자를 무더기로 쌓아 놓고 200개 전구에는 명사수들을 매복시켰다.

새벽 5시 총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온갖 구호와 표어가 적힌 깃발들이 각 진지에서 솟아올랐다. 성곽과 모든 건물의 옥상은 인산인해였다.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가운데 무기들을 치켜들며 구호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세숫대야·물통을 두들기고 있는 힘을 다해 꽹과리를 쳐 댔다. 폭죽이 연달아 터지고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베이징 시민 300만 명이 동시에 투입된 ‘인작대전(人雀大戰)’의 서막은 인류가 수천 년간 치러 온 그 어떤 전쟁보다 장엄하고 요란했다.

기습에 놀란 참새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허사였다. 고함들을 지르며 깃발과 무기들을 휘둘러 대는 바람에 앉을 곳이 없었다. 허공을 헤매다가 추락하는 참새들이 속출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뭇가지에라도 앉았다간 돌멩이와 총알 세례를 받았다. 인적이 없는 곳으로 몰린 참새들은 과자를 먹고 파닥거렸다.

사로 잡은 참새들을 들어 보이며 즐거워하는 소년. 김명호 제공

첫날 8만3249마리를 사살했다. 죽거나 포로가 된 참새들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창안제(長安街)를 누볐다. 사흘 동안 40여만 마리를 포살하자 시내에서 참새 소리가 사라졌다. 한 가족이 3만 마리를 잡은 사례도 있었다.

섬멸작전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동네마다 새총의 명사수들이 출현했다. 칭다오에서는 하루에 6412마리를 포살했고, 쓰촨성에서는 전투지역을 1000개로 나누어 20만 명을 투입하는 선진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58년 한 해에 전국에서 2억1000만 마리를 소탕했다.

이듬해 봄 전국의 논밭에 예년보다 많은 해충이 발생했다. 도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골목과 가로수에 벌레들이 들끓었다.

한 조류학자가 과일 생산지역과 베이징 근교의 농촌에서 848마리의 참새를 수집해 조사했다. 계절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참새들이 가장 많이 먹은 것은 해충이었다. 참새를 복권(平反)시켜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인민일보에 발표했지만 참새의 복권은 조조(曹操)의 명예를 복권시키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참새는 여전히 수탈자였다.

하지만 해충 피해에 대한 보고가 전국에서 올라오고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계속 발표되자 마오쩌둥은 참새를 복권시켰다. 대신 바퀴벌레가 4해(害)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참새 소탕전을 가장 즐긴 것은 애들이었다. 인민의 적을 때려잡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통쾌했다. 파닥거리는 참새들을 줄줄이 꿰어 갖고 노는 것에 비하면 다른 놀이들은 싱거웠다. 멋진 추억이었다. 10년 후 이들은 홍위병 완장을 찼다. 참새와의 전쟁 때 보고 익혔던 솜씨들을 원 없이 발휘했다. 참새와의 전쟁은 문혁의 전초전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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