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깜빡…"건망증 걱정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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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센스캠의 이미지. 빛의 변화나 사람의 동작을 인지해 촬영한다.

바쁜 일상 속에 휩쓸리다 보면 작은 기억들을 송두리째 잊어먹는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매일 아침 차 열쇠를 찾는 일도 다반사다. 어제 했던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생겼다. 기억을 되살려주는 카메라가 개발 막바지 단계에 돌입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 중인 '센스캠(SenseCam)'이 그것이다. 최근 워싱턴주의 본사에서 중간 발표회를 열었다.

센스캠은 배지만한 크기로 옷에 붙이거나 목에 걸 수 있는 소형 카메라다. 하루 2000장의 이미지를 128메가바이트의 플래시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다. 셔터와 같은 버튼은 달려있지 않다. 셔터 역할은 환경의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가 대신한다. 센스캠을 목에 건 사람이 밖에 있다가 방에 들어오면, 밝기 차이에 따라 환경이 변한 것을 센스캠이 감지하고, 방 안을 찍는다. 거기에 달린 렌즈는 넓은 각도로 찍을 수 있는 어안(魚眼)렌즈다. 시간과 순간 동작, 주위 사람들 또한 센서가 감지하는 대상이 된다. 센스캠에는 '액셀러로미터'라는 소형 장치가 달려있다. 이는 카메라의 흔들림으로 생긴 흐릿한 이미지를 줄여주는 '이미지 안정'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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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용 가능한 예를 들면 이렇다. 센스캠을 목에 걸고 자동차로 쇼핑가를 배회한다고 치자. 센스캠은 터널을 빠져나오거나 사람들이 앞에서 움직일 때마다 사진을 찍어 저장한다. 집으로 돌아온 뒤 메모리를 컴퓨터로 전송해 쇼핑가에서 만난 사람들을 확인하고, 쇼핑할 때 눈여겨본 상품들을 다시 한번 돌려보며 최종 결심을 할 수 있다. 일일이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며칠 뒤에나 몇달 뒤에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으면 컴퓨터에 재접속하면 된다. 카메라를 이용한 사진 일기장인 셈이다.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온 뒤 기념 사진첩을 만들 수도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서 센스캠을 개발 중인 린지 윌리엄스는 "실제 테스트를 해본 결과 아무런 문제 없이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며 "게다가 케임브리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아무도 센스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센스캠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차를 몰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병원의 의사들은 사고 순간을 담은 센스캠을 되살려 사고 발생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한 뒤 부상 발생 과정과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비행기의 사고 대비용 기록장치인 블랙박스와 매우 흡사하다. 살인사건 등을 수사하는 경찰들의 수고 또한 한층 덜어줄 수 있다. 치매를 앓는 노인들도 센스캠을 이용하면 기억을 어느 정도 되살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센스캠이 찍은 사진은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라는 분석 프로그램과 연결해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매일 찍는 많은 양의 사진을 쉽게 찾고 분류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연구개발 책임을 맡고 있는 릭 라히드 박사는 "상용제품은 100~200달러 수준일 것"이라며 "수년 내 나올 센스캠은 목소리는 물론 심장박동수 등의 건강 데이터 저장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센스캠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개인 컴퓨터에 접속한 해커가 사진일기장을 꺼내 유포할 수도 있다. 회사의 상사는 직원들의 작업복에 초소형으로 만들어진 센스캠을 달아 모든 활동을 감시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라히드 박사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그러나 그런 염려부터 먼저 한다면 개발될 기술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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