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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관건은 경기 흐름의 정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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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국내 금융과 자산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청와대 지하 벙커에 본부를 차리고 경제 위기 응급 대책을 필사적으로 추진해온 덕분이다. 사상 최저 금리, 사상 최대 수퍼 추경, 사상 초유의 통화 협력 등으로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그나마 금융과 자산 시장에 화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경기 회복감이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한 가지 심히 우려되는 점은 금융 부문과 실물 경기의 회복 간에 크나큰 괴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내 실물 경기에는 한동안 영하의 찬바람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세계 경제 침체 양상은 미국의 부동산 과잉 재고와 금융 부실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소비는 그간 누적된 가계 부채와 실업 때문에 조만간 증가세로 돌아서기가 힘에 버겁다. 설비투자 역시 기업의 수익성 약화 등으로 적어도 올해 중에 크게 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세계 경기 위축 속에서 국내 수출 또한 이전과 같은 경기 회복력을 얻기는 불가능하다. 실물 경기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금융과 자산 시장의 과열은 마치 중환자가 마취제와 응급조치로 인해 잠시 병이 나은 것처럼 느끼는 환각 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자칫 환각 상태가 길어지면 한국 경제는 건전하고 지속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실물 경기 호전이 뒷받침되지 않는 급속한 주가 상승은 또 다른 개미들의 희생만 초래한다. 불어난 시중 자금 때문에 대기 수요가 항상 즐비한 강남의 아파트 값만 치솟게 되면, 부유층의 ‘소비 환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논하기 전에 소득 양극화 심화라는 정서법에 호되게 걸릴 수 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생겨나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 역시 긴 안목에서 보면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는 원화 가치의 지나친 상승을 부추기고, 아직은 수출과 자본재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를 소리 없이 골병이 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금융과 자산 시장의 버블은 결국 물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는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 기조를 지탱하기 힘들게 만들어 결국은 전체 경기 회복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일본은 1990년대에 실물 경기가 미처 회복되기도 전에 섣부른 긴축 정책을 추진해 장기 침체의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지금은 국내 경제의 환각 증세를 하루 속히 깨우는 한편 건전한 성장 기조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늘어난 시중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해 주식 시장과 특정 지역의 부동산 거래가 과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확보된 재정 자금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내수를 확충하는 데 한 푼도 낭비하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미래 투자를 최대한 유인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적극 키우는 것도 서둘러 할 일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