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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Biz] 1조 달러 ‘이슬람 머니’를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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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집 사는 데 돈이 모자라 은행 돈을 써야 한다고 하자. 대개는 은행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린 뒤 원금과 이자를 매달 갚아 나간다. 금융 거래의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이슬람권에서는 다르다. 은행이 직접 집을 사 필요한 고객에게 넘겨주고, 은행은 이들로부터 일정 기간 구입 대금과 수수료를 할부로 받는다. 이는 이슬람 금융 거래의 70%를 점하는 ‘무라바하’란 금융 기법이다. 할부금융과도 유사하다. 우리가 보기엔 다소 낯선 이런 금융 관습이 탄생한 것은 ‘샤리아’라고 하는 이슬람 율법에서 비롯됐다. 샤리아에 따르면 금융 거래엔 노동이나 상품의 교환이 따라야 한다. 단순히 돈만 빌려주는 것은 상품의 교환이 아니다. 게다가 돈이 돈을 버는 이자를 기생적인 부당 이득으로 죄악시한다.

이쯤해서 이슬람 금융의 윤곽이 대략 그려졌다. 이자 수수 금지처럼 경제활동 관련 샤리아의 기본원칙이 적용되는 금융상품과 서비스가 이슬람 금융인 것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안 받으면 뭘 받나. 이슬람 금융에선 이자 지급 대신 수익 배분이 원칙이다. 이슬람은행이 A회사에 투자한다고 할 때 A사는 은행에 이자를 주는 게 아니라 수익을 당초 정한 비율에 따라 넘겨주는 것이다. 손실이 나면 어떻게 될까. 금전 손실은 은행이 모두 떠안고, A사는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이슬람 금융에선 ‘원금 보전’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또 이슬람에선 불확실성이 큰 금융 거래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 ‘태중에 있는 새끼의 가치를 미리 예측하여, 어미 낙타를 매매하지 말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런 정신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성립하는 선물 거래 등 파생상품 거래가 금지돼 있다. 보험도 불확실성과 함께 적은 보험료로 많은 보험금을 탈 수 있는 ‘투기성’ 때문에 금지된다.

담배·도박·술처럼 종교적·도덕적으로 금하는 것과 관련된 기업에 투자하는 것도 안 된다. 우리나라 담배회사인 KT&G가 주식형 펀드에 편성돼 있다면 이슬람 금융에선 이 펀드를 살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이다. 2006년 2월 싱가포르 증권거래소가 이런 원칙에 부합하는 기업들만 모은 별도의 주가지수(FTSE-SGC 아시아 샤리아 100)를 도입한 것이 같은 맥락이다.

금융회사가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를 발행 때도 이런 원칙이 적용된다. 수쿠크를 발행해 돈을 조달했더라도 이 돈은 철저하게 샤리아에 저촉되지 않는 상품이나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이슬람교도가 아니라면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조건들인 셈이다.

그런데도 지구촌이 이슬람 금융에 진한 ‘러브 레터’를 쓰고 있다. 유가 강세로 이슬람 금융의 힘이 몰라보게 세졌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이슬람 금융이 취급하는 자금은 1조 달러에 달했다. 한국도 이슬람 금융에 뜨거운 구애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샤리아 권위자를 자문역으로 영입했다. 굿모닝신한·우리·KTB 같은 증권사들도 이슬람 금융에 문을 두드리고 있다. 범 정부 차원의 이슬람 금융 태스코포스(TF)까지 꾸려져 이슬람 머니를 유치하기 위한 제도 개편 방안을 연구 중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과 국내 금융회사 대표들은 싱가포르에서 열리고 있는 이슬람금융서비스위원회(IFSB) 총회에 맞춰 6일 현지 한국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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