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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장 풀리는 외국인 기업사냥]외국펀드 작전 상황…헐값에 알짜만 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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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겹겹이 채워졌던 국내 적대적 인수.합병 (M&A) 시장의 빗장이 풀리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적 유명 펀드 (투자신탁자금) 들이 줄지어 몰려들고 있다.

국내 주가와 원화 값이 워낙 떨어져 웬만하면 손해볼 게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데다 M&A 시장마저 열리는 마당에 알짜기업을 '사냥' 하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이들 펀드가 주축이 된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 열기는 92년 증시 개방 이후 사상 최고조에 달해 지난해 12월11일 투자한도가 종목당 50%까지 확대된 뒤 지난달 말까지 50여일새 무려 2조1천여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특히 일부 펀드는 특정 주식 종목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어 해당 상장사들은 그 저의가 무엇인지, 펀드의 성격은 어떤지 수소문하느라 대형 증권사 국제부서나 M&A 전문업체.유명 로펌 (법률회사)에 문의하는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올들어 특정 상장사 지분의 5% 이상을 취득했다고 신고한 외국 펀드나 기업은 벌써 18개에 달한다.

일부 펀드는 투자 유망기업을 물색하기 위해 해당 회사를 직접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공격태세로 나오는가 하면 최근엔 전문펀드가 아닌 제조업체까지 주식 매집에 열을 올리고 있어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곳은 미국 뉴저지주 소재 아팔루사 펀드. 조세 피난처인 케이맨군도 소속 역외 (域外) 펀드인 팔로미노 펀드와 함께 대우통신 주식 9.03%를 지난달 꾸준히 매집해 이 회사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효성T&C.한국타이어.SKC의 5% 이상 주주가 됐다고 지난 2일 증권거래소에 신고해왔다.

이 펀드는 국내엔 다소 생소한 편. 지난해 12월3일 국내 외국인투자자로 처음 등록하면서 혜성처럼 나타나 불과 두달여만에 미국 템플턴과 더불어 국내 최대 외국펀드로 떠오르고 있다.

쌍용투자증권 관계자는 이 펀드에 대해 "연금기금처럼 여러 종목에 조금씩 분산 투자하는 뮤추얼펀드와 달리 특정 유망종목을 찍어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헤지펀드 성격이 강하다" 고 전했다.

아팔루사 펀드는 지난달 4, 5명의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해 20개 우량기업을 탐방하고 돌아간 일이 있어 한국기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늠케 했다.

이밖에 미국 제네시스 펀드는 웅진출판.에스원.서흥캅셀 주식을, 오크마크 펀드는 태영.롯데칠성.금강 주식을 각각 5% 이상 취득해 역시 관심을 끌고 있다.

펀드의 성격도 가지가지다.

제네시스 펀드는 블루칩 뿐만 아니라 중소형주에도 많이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다.

올들어 부광약품 주식을 많이 사들인 베어 스턴스 증권은 유망 소형주 종목 발굴에 장기가 있는 뮤추얼펀드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 투자기관이 아닌 외국 제조업체가 특정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집하는 경우도 생겼다.

미국의 세계적 승강기 업체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는 국내 굴지 동종업체인 동양에레베이터 지분 9.62%나 확보했다고 지난 2일 거래소에 신고해와 M&A 저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증시전문가들은 "펀드 자금이라 하더라도 외국 경쟁업체의 부탁을 받고 주식을 대거 사들인 뒤 투자고객의 뜻대로 경영에 꼬치꼬치 간섭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의 유수한 반도체 업체가 자국 펀드에 의뢰해 국내 반도체 블루칩을 대거 매집했다는 소문이 연초부터 증권가에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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