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포]테이프 레코딩 반세기…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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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금세기 최고의 소프라노로 불리는 마리아 칼라스 (1923~77)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20년이 지났지만 매년 3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음반 덕분에 음악팬들은 그녀가 아직 살아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욕심을 더 부려서 칼라스의 목소리로 90년대에 작곡된 신작 오페라나 심지어 비틀스나 봅 딜런의 노래를 들을 수는 없을까. 현재의 음반 녹음기술로 미뤄 본다면 얼마든지 실현가능한 일이다.

칼라스 목소리의 음색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음고 (音高) 는 물론 템포.성량을 바꿀 수 있는 고도의 편집기술 덕분이다.

자료는 생전에 웬만한 오페라 아리아들은 거의 녹음해 놓은 칼라스의 음원 (音源) 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시간적, 경제적으로 손쉬운 일은 아니다.

살아있는 가수의 녹음에 드는 비용보다 더 들기가 쉽다.

하지만 음반녹음에서 디지틀 시그널 프로세싱 (DSP:전자신호처리) 이 보편화되면 앞으로는 인건비 (개런티)가 많이 소요되는 수공업시대의 유물인 스튜디오 녹음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녹음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아티스트 전속계약을 기피하고 LP시대의 아날로그 녹음을 재발매하는 최근의 추세로 본다면 유명 성악가의 목소리만 샘플링해 가상의 녹음을 만들어내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음반산업은 살아있는 작곡가의 음악, 즉 현대음악을 무시해왔지만 앞으로는 살아있는 연주자들을 외면할지도 모른다.

이미 음반사 창고에 쌓여있는 음원들은 얼마든지 있다.

새로운 편곡과 편집기술을 가미한다면 앞으로 50년간 충분히 음반산업이 먹고 살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의 환생.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이같은 녹음기술의 혁신은 이미 50년전에 예견되었다.

처음부터 가위질과 합성이 가능했던 테이프 레코딩의 발명 때문이다.

한곡의 소나타나 교향곡을 녹음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테이프에서 나온 10개, 심지어는 수백개의 단편을 한데 엮는 일이다.

오페라 아리아의 까다로운 고음은 다른 성악가의 녹음을 따서 삽입할 수도 있다.

디지틀 녹음기술의 쾌거로는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음악사의 뒷전으로 사라진 카스트라토 (거세한 성인남자의 목소리) 의 신화를 재생해낸 영화 '파리넬리' (1995년)가 꼽힌다.

미국 출신 흑인 테너 데릭 리 래진과 폴란드 출신 소프라노 에바 고들레프스카의 목소리를 합성해 주인공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수십회 반복한 녹음에다 3천여회의 편집과정을 거친 것. 프랑스 현대음악음향연구소 (IRCAM)에서 7개월동안 정밀한 컴퓨터 처리로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한 것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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