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MB노믹스의 실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사실 MB노믹스가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추정해 보자면 크게 보아 규제완화와 감세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자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선 때는 이를 뭉뚱그려 ‘경제 살리기’란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MB노믹스라고 하면 747공약(연간 7% 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7대 강국 도약)이나 한반도 대운하 사업 같은 구체적인 사업 공약이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은 MB노믹스를 그런 일련의 사업 계획으로 이해했을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한 고위 경제관료의 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거창한 경제철학이나 패러다임보다는 손에 잡히는 구체적 사업계획을 선호했다고 한다. 건설회사 최고경영자를 지내서인지 경제정책도 구름 잡듯이 공허한 소리가 아니라 숫자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업계획의 형태로 제시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회사의 사업계획은 개별 사업장이나 프로젝트별로 짤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한 나라의 경제정책은 그런 개별 사업계획의 총합이 아니다. 건설회사는 이익을 많이 내야 한다는 지상목표가 있고 개별 사업은 그 상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부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가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의 목표는 이윤이 아니며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업들도 서로 연관돼 분리하기 어렵다. 국가는 성장도 이뤄야 하고, 국민들의 복지도 챙겨야 하며, 지역 간 균형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국가적 목표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상호 연관성을 감안해 정부의 재원과 역량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 그런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경제정책의 목표와 우선순위가 정해진 후에 개별 사업계획을 짜는 것이 순서다. 무작정 사업계획을 짜서 한데 모은다고 경제정책이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747이나 대운하 공약은 처음부터 국가의 비전이나 정책목표가 될 수 없었다. MB노믹스의 실체가 그것이었다면 MB노믹스는 이미 실패했다. 747공약은 이미 물 건너 간 지 오래고, 대운하는 시작도 못한 채 좌초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제가 총체적으로 실패했는가. 그렇지는 않다. 한국 경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선방하고 있고, 정부의 정책대응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MB노믹스가 실패했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정부는 MB노믹스가 퇴조한 이후 심기일전해 이른바 녹색뉴딜과 휴먼뉴딜을 새로운 간판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환경친화적인 기술과 개발사업을 통해 성장을 도모하자는 것이 녹색뉴딜이요, 경제위기 속에 저소득층을 보호하고 중산층의 몰락을 막자는게 휴먼뉴딜이다. 4대 강 사업과 자전거 보급, 사교육 방지책 등 온갖 사업이 녹색뉴딜과 휴먼뉴딜의 간판을 달고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의 큰 방향은 보이지 않고 개별사업들만이 포장을 달리해 난립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 체제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 핵심은 시장과 정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다. 정부는 사업 아이디어를 짜내기에 앞서 이에 대한 답을 먼저 구해야 한다. 과연 이 정부가 지향하는 경제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