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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이튿날 70명 반란표…21일 원내대표 경선이 고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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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0면

#장면1=2005년 4월 30일. 참여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재·보궐 선거는 집권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국회의원 6곳과 기초단체장 7곳의 당선자 중 열린우리당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다음 날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 이슈의 중심도 아니었고 철저히 선거구별 후보 특성이 반영된 선거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0대5’ 굴욕 이후, 친이-친박 불안한 동거

#장면2=4년 뒤인 2009년 4월 29일. 이명박 정부 첫 재·보선 역시 집권 여당의 0대5 완패로 끝났다. 이번에도 청와대는 “재·보선은 지역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크게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원내 172석이라는 의석에도 불구하고 지리멸렬한 여권의 미숙한 국정운영과 청와대의 선 긋기, 이에 등 돌린 민심은 2005년과 2009년의 재·보선을 정확하게 대칭으로 만들고 있다. 재·보선 충격에 빠진 여권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들여다봤다.

“경주 선거, 박근혜에겐 양날의 칼”
1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원내대표가 사회자와 가벼운 설전을 벌였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뼈아픈 지역이 어딘가.
“경주다. 경주에 가 보니 친이-친박 대결이라기보다 정종복 대 반정종복의 대결이더라.”

-혹시 야당이 부평에서 반MB 전략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니까 그쪽(경주)으로 말을 돌리는 건 아닌가.
“난 그렇게 치사하게 돌려서 말 안 한다.”
실제로 여권 내에서는 이번 재·보선 지역 중 어느 곳의 결과를 더 의미 있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다. 청와대와 수도권 의원들은 대체로 부평을 선거에, 영남 지역 의원들은 경주 선거 결과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

부평을의 경우 청와대 정무라인과 당 관계자들의 당초 판단은 이재훈 전 산업자원부 차관을 공천할 경우 승산이 높다는 것이었다. 호남 출신(광주)으로 민주당의 호남 표를 어느 정도 분산할 수 있는 데다 지역 현안인 GM대우 처리 문제 공론화를 통해 여당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비리도 한나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민주당 홍영표 후보의 10.4%포인트 차 완승이었다.

일차적으로는 민주당이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손학규·김근태·한명숙 고문 등 지명도 높은 정치인들을 상주시키며 올인한 전략이 부동층 흡수에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다. 윤관석 민주당 인천시당 대변인은 “지역 기반이 전혀 없는 여당 후보가 내려와 GM대우 문제를 거론하며 표를 달라는 식의 선거운동을 한 데 대해 유권자의 호응이 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내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수도권 중산층의 민심 이반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실제로 최근 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여건이 빠르게 호전되고 있지만 여권 지지도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1년간 가진 자 위주의 일방적 국정운영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웰빙 정당’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되면서 선거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30일 휴대전화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2.6%에서 25.0%로, 한나라당 지지율은 34.7%에서 23.5%로 급락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최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논란에서 보듯 이명박 정부가 특정 계층의 이익에 치중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고, 이를 선동적으로 이용하는 야당의 전략이 먹히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식으로 이슈 관리가 안 되면 경제가 아무리 나아져도 지지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보선 참패의 원인을 당내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72석이라는 다수 의석을 가졌음에도 야당에 밀려 미디어법 같은 중요 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력에 대한 비판이다.

핵심 ‘개혁법안’이라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한나라당 의원 141명 중 70명의 반대표로 부결된 것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해당 상임위(정무위)에서 통과된 안을 야당 반대를 이유로 여당 원내대표가 내용을 고쳐 본회의에 올리고, 이에 여당 상임위원장인 김영선 의원이 두 차례나 반대 토론에 나서 반란표를 유도하는 희극적인 상황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연출된 것이다.

한나라당 재·보선 참패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친이-친박 계파 갈등은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친박 진영의 예상 외 침묵은 친박을 표명한 무소속 후보 완승에 대한 도의적 부담감과, 갈등이 확산될 경우 박근혜 전 대표의 ‘강 건너 불구경식 태도’에 대한 역풍이 불 수 있음을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불안한 동거’는 그야말로 시한부 동거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이달 중 실시될 당협위원장 선거를 시작으로 21일 차기 원내대표 선출과 다음 달 16개 시·도위원장 경선 과정에서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원희룡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국민과 의원들이 있다는 현실을 무시하면 중요한 장면에서 여당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걸 이번 선거가 명백히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친박계에 대한 당직 배분이나 입각 등을 통해 박 전 대표 끌어안기에 나서
지 않을 경우 상황은 점점 꼬여 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경주 선거가 박 전 대표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홍 원내대표는 “경주 선거는 결과에 관계없이 박 전 대표에게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공천에 떨어질 것 같은 사람이 친박을 내세우며 무소속 출마하는 일이 재연된다면 이는 정당정치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표도 당원들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떠오르는 6월 당·정·청 인적 개편론
과거 정권들은 재·보선 충격 후에 인적 쇄신 같은 나름의 국면 전환용 카드를 내놓고 반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는 인적 쇄신도, 국정운영 변화도 없을 듯한 분위기다. 여의도의 ‘정치’와 청와대의 ‘국정운영’을 분리하는 MB식 스타일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다음 달 16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개각설에 대해서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인사 철학상 여론에 떠밀려 하는 인적 쇄신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청와대 분위기와 비슷하게 한나라당도 선거 관련 인책은 최소화하는 대신 당 쇄신특위를 구성해 당 체질 개선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정도 처방만으로는 10월 재·보선이나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 당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출마가 예상되는 10월 재·보선 때는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충청권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이번 충북 증평군의원 선거나 수도권인 시흥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모두 이긴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한나라당 개혁 성향의 초선 모임인 ‘민본21’은 조만간 공개 성명을 통해 국정운영 기조의 변화와 인사 쇄신, 당내 화합을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요구할 방침이다. 여권 주변에는 6월 중 중폭 이상의 개각을 단행해 당·정·청 진영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최근 부처 간 엇박자를 내고 있는 외교안보 라인이나 교육 관련 부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과정에서 실책을 저지른 경제 라인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2선 후퇴론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정종복 후보가 전화나 대면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지만 자동응답시스템(ARS)을 이용한 여론조사에서는 무소속 후보에게 크게 뒤졌음에도 정종복 카드를 고집한 데 대해 그의 후견인 격인 이 의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정두언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사실상 당내 대결을 벌인 경주에서 제3의 후보가 나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으며, 그렇게 못 하는 당이라는 게 부끄럽고 아쉽다”고 말했다.

친박 김무성 원내대표 출마 주목
재·보선 혈전을 치른 여야는 5월 중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한나라당의 새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는 안상수·정의화·황우여 의원 등 4선 의원 3명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로 친박계 정책통인 최경환·진영·김성조 의원 등에게 ‘러브콜’을 던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친이-친박의 갈등 해법으로 ‘김무성 원내대표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친박 좌장 격인 김무성 의원을 원내대표에 앉혀 자연스럽게 박 전 대표의 협조를 이끌어 내자는 구상이다.

물론 반대 기류도 강하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원내대표는 정국 운영을 주도하는 핵심 중의 핵심 포스트인데 친박 배려 차원에서 인선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측근도 “이야기만 나오다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불신만 깊어질 뿐”이라고 일축했다.

15일 열릴 예정인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도 관심거리다. 정세균 대표와 가까운 주류 측 후보들과 정동영 당선자의 공천을 주장했던 비주류 간에 계파 대결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정동영 당선자의 복당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주류 측에서는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다 원혜영 원내대표에게 양보했던 김부겸(3선)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이 결심을 굳혔다. 박병석(3선) 정책위의장과 이미경(4선) 사무총장도 출마 여부를 놓고 막판 고심 중이라는 전언이다. 부평을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손학규계의 송영길(3선) 최고위원도 출마를 검토 중이다. 이들은 모두 정동영 후보의 공천 배제를 주장했다.

비주류계에서는 민주연대 공동대표인 이종걸(3선) 의원과 지난해 경선에 도전했던 이강래(3선) 의원이 출마 준비를 하고 있다. 중도 성향 의원 중에는 이석현(4선) 의원과 홍재형(3선)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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