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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동네에서 벌어지는 웃기는 일상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2호 13면

사람 고기를 먹는 일 따위는 나오지 않지만 어쩐지 영화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나 ‘조용한 가족’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소설이다. 끔찍한 이야기인데도 웃음이 픽픽 새는 ‘코믹 잔혹극’과다. 분량도 원고지 800쪽 정도로 ‘착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소설 『도살장 사람들』,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안규철 그림, 현대문학 펴냄, 184쪽, 1만원

옮긴이의 친절한 안내처럼 소설은 첫 머리, 즉 ‘인서피트(incipit·책이나 음악의 첫 부분)’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화자 ‘나’는 자신의 동네가 서풍이 불면 썩은 달걀 냄새가, 동풍일 때는 유황 냄새가, 북풍일 때는 시커먼 먼지가 실려 오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또 자주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남풍이 불면 “딱히 다른 단어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정말 똥 냄새가 난다”고 능청을 떤다.

내가 사는 동네는 다른 동네 같으면 하나라도 들어서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쓰레기 하치장·폐수처리장·굴뚝 공장·변전소·비행기 활주로 등 각종 혐오시설이 백화점처럼 들어선, 사람 살 곳 못 되는 곳인 것이다. 나는 말한다. 어려서는 “철로 변에서 놀았고 전신주에 올라갔으며 폐수처리장 물속에서 수영”하다 커서는 “폐차장에 버려진 자동차의 찢어진 좌석에서 첫 섹스를 했다”고.

온갖 중금속을 먹고 자라 핏속에는 수은이, 뇌 안에는 납 성분이 박힌 나는 동네의 다른 사람들처럼 도살장에서 일한다. 자연히 나의 일상은 강처럼 흐르는 핏물 속에서 소·돼지들의 내장 등속에 코를 박고 속을 뒤지는, 구역질 나는 일로 채워진다.

이런 정도가 ‘잔혹’의 조건들이라면 ‘코믹’은 소설 속 잡다한 에피소드를 다루는 저자 특유의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그런 글쓰기는 단순한 수사학의 차원이 아니라 웃음기와 인간미 밴 저자의 대상에 대한 시선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코믹’의 압권은 총 몇 방을 맞고도 죽지 않는 소와 씨름하다 결국 오발로 비명횡사한 동료 피뇰료의 부인에게 부음 사실을 알리는 대목이다. 피뇰료의 집을 찾아가는 나와 또 다른 동료 보르슈. ‘덤 앤 더머’ 같은 둘은 세상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첫마디를 뭘로 해야 할지를 두고 부심한다. 둘은 다음과 같은 첫마디들을 차례로 떠올린다.

“‘피뇰료 부인, 좋지 않은 소식이 있습니다’ ‘피뇰로 부인,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피뇰료 부인, 용기를 내셔야 합니다’ ‘피뇰료 부인, 남편께서 재수가 없었습니다’ ‘피뇰로 부인,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피뇰료 부인, 우리가 왜 방문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거의 개그콘서트 대사 수준이다.

천금 같은 자투리 시간, 딱히 할 일이 없다면 오징어라도 질겅질겅 씹으면서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소설은 단순히 심심풀이용만도 아니다. 곱씹어 보면 소설 속에는 지각할까 봐 안달복달하는 직장인, 나만 미워하는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 상가(喪家)에서 오가는 망자에 대한 은밀하고 까칠한 생각과 평가 등 지극히 정상적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두루 등장한다.

그럴 때 소설은 현실에 대한 과장을 통한 풍자가 된다. 결국 착잡한 소설 속 에피소드들 위로 향기롭게 고이는 말간 것은 동료에 대한 믿음, 사람 사이의 유대 같은 것이다. 2005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소설은 한 방송사의 독자 인기 투표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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