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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 이후 학원 금지 여름방학 전 서두르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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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장관급)이 언론 인터뷰에서 ‘오후 10시 이후 학원 영업 금지’ 구상을 밝힌 건 지난달 23일이었다. 해프닝으로 넘어갈 줄 알았던 곽 위원장의 ‘사교육 옥죄기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영리기관 위탁 등 방과후 학교 활성화 ▶수학·과학 가중치 폐지를 통한 외국어고 입시 개혁 등 파격적이고 구체적인 반(反) 사교육 방안이 그의 입에서 쏟아졌다.

주도권을 빼앗긴 교육과학기술부는 격분했다. “조율 안 된 아이디어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그를 공격했다. 그러자 미래기획위는 “교과부가 우리와 협의를 해놓고 딴소리를 한다”고 반격했다.

두 기관 사이의 갈등은 이명박(MB)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조율에 나서 겨우 봉합됐다. 이 대통령은 미래기획위 쪽엔 정책의 직접 발표 자제를, 교과부엔 위원회 아이디어의 수용을 지시했다.

‘MB의 정책 오른팔’로 불리는 곽 위원장이 이처럼 조급하게 개혁방안 등을 쏟아낸 이유는 뭘까. MB의 각종 개혁 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여권의 정책 관계자들은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고 입을 모은다.

곽 위원장은 경제학자 출신이다. 평소 “사교육 대책도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소비와 납세의 축인 중산층이 붕괴하면 국가 경제가 붕괴한다” 등의 주장을 펴 왔다. 이 같은 위원장의 소신에 따라 올 초부터 미래기획위는 여름방학 전에 혁신적 사교육 줄이기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교과부를 압박해 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학원 등 사교육 시장 수요가 폭증한다. 이런 ‘방학 사교육 시장’을 방치하고선 하반기에 본격화할 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당길 수가 없다는 게 미래기획위의 생각이다.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조정을 강행할 경우 한계 중산층이 붕괴,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미래기획위가 교과부에 ‘속도전’을 주문한 이유다.

실제로 교육 당국은 방학 때면 가계당 사교육비가 3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또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계기업들에 대한 빠르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구조조정이 현실화될 경우 대부분 기업들의 정리해고·임금삭감 등으로 이어진다. 미래기획위의 전망대로 사교육비가 중산층의 존폐를 위협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청와대의 한 정책라인 관계자는 “가계실질소득을 보전해 줘야 중산층이 올 하반기를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사교육비를 줄이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머타임’도 사교육이 걸림돌=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제)의 연내 시행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서머타임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나면 부모는 그만큼 사교육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반대론에 부딪혔다. 이 관계자는 “서머타임 도입에 앞서 교과부의 ‘방과후 학교’나 보건복지가족부의 ‘방과후 돌봄’ 같은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부처 회의의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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