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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현장 노조들이 이성적으로 변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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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근로자의 날이었던 어제 전국에서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열렸다. 서울 도심에서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일부가 경찰에 연행되는 등 소소한 사고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큰 소동 없이 끝났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고통 받는 국민에게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여기엔 강경투쟁의 대명사인 민주노총의 태도 변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근로자의 날을 앞두고 이 단체 신임 위원장은 “현장 노조들이 이성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6월 총파업 계획을 접었다”고 밝혔다. 지도부가 파업을 밀어붙이려 해도 추진 동력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 돌아가는 형국에 아랑곳하지 않아온 민주노총의 그동안 행적에 비춰볼 때 의외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 속에 담긴 진정성은 좀 더 지켜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위기의 경제상황에서 일단은 환영할 일이다.

안팎의 위기를 맞고 있는 민주노총은 이번 파업 포기 선언을 근로자를 위한 진정한 노동단체로 거듭나는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행여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이용한다면 파멸을 앞당길 뿐이다.

“현장이 이성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각성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행보가 얼마나 비이성적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그 한복판엔 언제나 권력화된 지도부가 있었다. 그들만의 선명성 투쟁을 위해 일선 노조들을 정치파업에 내몰았고, 사기도박·횡령에 성폭력까지 일삼으며 진보단체의 생명과도 같은 도덕성을 땅에 떨어뜨렸다.

민주노총이 사는 방법은 이런 불합리와 부도덕성을 일신하는 길뿐이다. 그러려면 조직 전체에 시장의 흐름을 읽는 실리적 사고와 비리부패와 맞서 싸우려는 도덕적 풍조가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파괴와 선동을 일삼는 투쟁 방식도 이제 바꿔야 한다. 민주노총은 며칠 전 경찰과 평화시위를 약속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선진 시위문화가 계약을 맺는다고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지도부가 스스로 앞장서 과격투쟁을 지양하는 모습을 보여야 산하 조직들이 따른다.

차제에 1999년 박차고 나갔던 노사정위에도 복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국민 최대의 관심사인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국민은 민주노총의 ‘이성적’ 변화를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