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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나간 자전거 ‘자동차와 곡예 대행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나갈 경우 차도를 이용해야 할까 보도를 이용해야 할까.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로 분류되기 때문에 차도를 달려야 한다. 하지만 실제는 보도를 주행하는 자전거가 더 많다. 자전거를 타고 차도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자전거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나라당 김태원(고양 덕양을) 의원은 지난 2월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 도로교통법 등 자전거 관련 8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자전거를 몰고 도로로 나간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김 의원과 함께 출근길에 자전거로 몰고 도로로 나가봤다. 20년 가까이 자전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오수보 (사)자전거21 사무총장의 도움을 받았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IC에서 자전거를 탄 운전자가 힘들게 자동차 사이를 뚫고 행주대교로 향하고 있다.

◆보도에 만든 자전거도로 곳곳 단절

사진1


4월 23일 아침 경기 고양시 행신동 무원마을 삼보아파트 앞. 자전거를 이용해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출근할 경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김태원 의원, 오수보 총장 그리고 4년째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 원호연 보좌관이 모였다.
오전 8시 20분 일행 3명은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출발했다. 기자 역시 자전거를 몰고 뒤를 따랐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온 일행은 먼저 차도로 접어들었다. 보도에 자전거 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 여m를 달리자 교차로(네거리)가 나왔다. 직진해야 하지만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멈춰 섰다. 오른쪽을 살펴보니 보도 가운데 자전거 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는 횡단보도 5m 앞에서 뚝 끊어져 있었다(사진1). 횡단보도를 건넌 후에도 자전거 도로는 바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자전거 도로가 아닌 보도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혀 상해를 입힌다면 자전거 이용자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가 갑자기 보도로 돌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도에 만든 자전거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보도를 만나면 자전거 운전자는 내려서 끌고 가야 한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보도를 지나 자전거 도로에서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오 총장에 따르면 2007년 현재 전국의 자전거도로 총 연장은 9170km. 하지만 90% 가량은 자전거보행자겸용도로다. 보도 쪽에 설치한 자전거도로는 곳곳이 끊어져 있고 도로 건설도 지자체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자전거도로가 따로 있는 곳에서는 이 도로를 이용해야(도로교통법 13조6항) 하지만 도로 현실은 이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네거리에서 좌회전은 어떻게 하나

사진2


500m 가량을 더 달리자 다시 교차로가 나왔다. 좌회전을 해 왼쪽 도로를 타야 하지만 빨간 신호가 들어와 다시 멈췄다. 자전거는 도로를 이용할 경우 맨 바깥 차선 우측 가장자리를 이용해야 한다. 편도 2차선도로에서 바깥 차선에 있는 자전거는 어떻게 좌회전을 해야 할까(사진2).
교차로에서 동시직진일 경우 바깥 차선 가장자리를 달리는 자전거가 좌회전을 하면 직진하는 차량과 부딪힐 위험이 크다. 이 경우 접촉사고가 나면 책임은 자전거 운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현행법에는 자전거가 차도에서 좌회전하는 방법에 대한 규정이 없다.
자전거 관련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김 의원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이를 추가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할 경우 자전거 운전자는 바깥 차선 오른쪽 가장자리를 직진으로 교차로를 통과한 후 좌회전 방향의 도로에서 신호를 받아 바깥차선 가장자리를 이용해 다시 교차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른바 ‘훅(ㄱ) 턴’이다.
교차로에서 멈춰선 일행은 파란 신호를 두 번 받아 능곡사거리 방향으로 달렸다. 편도 3개 차선이던 도로는 갑자기 2개 차선으로 줄어들었다. 도로 가장자리를 달리던 자전거는 일순간 차량과 가드레일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행주대교 IC에서 아찔한 곡예 운전

사진3


능곡사거리를 무사히 빠져나온 자전거는 한강 위 행주대교로 접어들기 위해 인터체인지(IC)를 통과해야 한다. 짧은 거리에 차량이 진출하고 진입하는 곳이 각각 2곳씩 있었다. 자전거 운전자는 빠져나가려는 차량과 들어오려는 차량과 곡예를 벌어야 했다. 인터체인지를 조금 못 미친 행주고가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한 후 돌아서 행주대교로 진입하는 방법이 있지만 일산, 능곡 등에서 서울 여의도 방향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인터체인지를 통과하기 때문에 일행도 이 도로를 체험해 보기로 했다. 이날 오전 7시 40분부터 일행이 통과한 8시 40분까지 1시간 동안 이 도로를 통과한 자전거 운전자는 30명 가까이 됐다.
진출로→진입로→진출로 순으로 3곳을 어렵지 않게 통과한 일행은 마지막 자유로에서 행주대교로 진입하는 차량과 잠시 엉켰다(사진3). 이 구간은 다리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경사마저 심해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차량에 막혀 자전거를 멈춘다면 다시 출발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 자전거를 위해 별도의 횡단도로를 만든다면 자유로의 차량 정체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오 총장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인터체인지가 있는 구간은 대부분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별도의 자전거 도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다리 위 좁은 도로서 마주 달리는 자전거

사진4


행주대교에 진입하면 자전거는 차도가 아닌 자전거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다리 가장자리 난간 쪽에 난 도로는 폭이 1.2m 정도였다. 자전거 한 대가 달리기에는 충분했다. 다리를 건너면 자전거 타기 좋은 한강 둔치 자전거도로로 접어든다. 하지만 다리 위 도로를 50m 가량을 전진한 일행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와 마주쳤다(사진4).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자전거도 오른쪽 도로를 통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의아했다. 의문은 잠시 후 풀렸다. 행주대교를 통과해 곧바로 오른쪽으로 돌아 경사로를 따라 다리 밑으로 내려와 보니 행주대교는 편도 3개 차선으로 된 두 개의 다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김포공항 방향에서 고양시 쪽으로 가는 다리에는 한강 둔치 자전거도로와 연결되는 경사로가 없었다. 고양시 방향에서 서울로 출근할 때는 자전거를 이용할 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달릴 수 있지만 퇴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역주행을 해야 한다.

◆한강 자전거도로에도 복병은 있다.

사진5


한강 둔치에는 자전거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도로 폭도 비교적 넓어 자전거가 달리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4km 가량은 어렵게 달렸지만 남은 10여 km는 탄탄대로일까.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한강 둔치에 만든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였다. 오전 이른 시간이지만 운동이나 산책을 위해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달리는 자전거와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뒤섞이기 일쑤다(사진5). 자전거는 대부분 오른쪽으로 달리지만 사람들은 오른쪽, 왼쪽 양 방향으로 일정치 않았다. 달리는 자전거와 지나가는 사람이 접촉 사고가 발생하면 잘잘못을 가리기 쉽지 않다. 또 일부 구간은 도로 폭이 좁아지거나 곳곳에서 공사를 하느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이 더러 있었다.
차량이 없어 한강 자전거도로에서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속도를 낼 수 없었다. 행주대교에서 여의도 국회 옆까지 40분 가량이 걸렸다. 이제 의사당 뒷편 운동장 쪽으로 난 문으로 올라가면 국회로 들어가면 끝이다.

◆ 국회 내에서 자전거를 타면 안된다?

사진6.국회에 도착하는 김태원 의원과 오수보 총장(왼쪽)


국회 북쪽 한강 둔치에서 국회로 연결되는 아래 도로는 서쪽으로 일방통행이었다. 이 도로를 잘못 타면 올림픽도로로 빠져 버린다. 어쩔 수 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위에 있는 도로로 올라가는 길도 서쪽으로 일방통행.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국회 북쪽 문이 보였다. 자전거를 끌고 횡단보도를 건넌 후 자전거에 올라타 국회로 들어가 의원회관으로 달렸다(사진6).
“국회 내에서는 자전거를 타면 안됩니다”
의원회관 앞에 도착할 무렵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국회 내에서 차량 주행과 주차를 관리하는 요원의 목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원회관 앞 주차공간에는 자동차들로 꽉 차 차량을 더 세울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지난 2월 자전거 관련 8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김태원 의원은 겸연쩍은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전거를 이용해 출근하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쉬운 게 하나도 없군요”

글·사진=노태운 기자, 김선욱 인턴기자 noh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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