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19. 내 그림자 이경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고인이 된 이경우(右)와 아들 민형.

오캄포가 나를 괴롭힌 대표적인 선수라면 나를 위해 희생한 대표적인 선수가 이경우다. 이민형 전 삼성코치의 부친인 그는 나와 배재고 시절부터 고려대.공군.농업은행.기업은행까지 12년간 함께 운동했다. 원래 그는 성동중 선수였다. 그런데 선수가 부족했던 배재에서 스카우트해 고교 때부터 나와 같이 뛰게 된 것이다. 188cm의 큰 키와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그를 보면 농구를 위해 조물주가 만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피나는 훈련을 거쳐 한국 농구의 정상급 센터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스타 플레이어 자리에 오른 적은 없었다. 항상 나 때문에 희생됐고, 또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는 나와 함께 공군에 입대했다. 당시 공군팀 주전센터는 백남정이었다. 그러나 이경우와 내가 공군에 입대할 때 백남정을 포워드로 보내고 이경우를 센터로 기용하겠다는 약속이 돼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공군에 들어가니 상황이 바뀌었다. 백남정이 그대로 센터를 맡고, 이경우는 후보 센터가 된 것이다. 차라리 나하고 떨어져 육군이나 해병대로 갔더라면 이경우는 한국의 최고 센터로서 각광받는 스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내게 불평을 하지 않았다.

공군에서 불우한 시절을 보낸 그는 제대 후 또 나와 함께 농업은행에 입단해 드디어 베스트5에 들었다. 그와 나는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 그가 골밑을 든든히 지켜주는 덕분에 나는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박수는 내게 쏟아졌다. 그래도 그는 전혀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스타일대로 경기를 했다. 그는 내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나를 대신해 필리핀의 오캄포와 싸운 것이다. 대만 4강자 리그전의 한국 대 필리핀 경기에서였다. 리바운드를 다투던 이경우와 오캄포가 함께 코트에 쓰러졌다. 그런데 오캄포가 일어나면서 이경우를 때렸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이경우도 오캄포에게 한 방을 날렸다. 오캄포의 얼굴에 다섯 바늘을 꿰맬 정도의 상처가 났다. 그러자 벤치에 있던 한국과 필리핀 선수들까지 뛰쳐나와 패싸움이 벌어졌다. 아시아 농구계에 오점을 남긴 사건이었지만 나는 그 일로 이경우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더구나 이경우는 우리 부부의 중매쟁이(?)였다.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맹훈련을 하고 있던 1964년 여름, 이경우가 "형, 처제 친군데 말이야"하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학교도 후배고, 나이도 어린 그가 일찍 결혼해 '집사람' '처제'하는 게 부럽기도 하고 심술도 났다. 그는 '그 친구'가 학벌 좋고 인물 좋고, 마음씨도 곱다며 극찬했다. 그러면서 내 천생배필이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경우의 아내가 '그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나는 당황해 말도 잘 못했다. 그러고는 못 만나다 내가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갔는데 그 새 국내 언론에서 나와 그를 '약혼'시켜 버렸다. 명백한 오보였지만 어머니는 맞장구를 치셨다. 사실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65년 4월 14일, 나는 서른살에 이진숙과 결혼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