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10대 한국병]6.낭비적인 정부·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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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제통화기금 (IMF) 시대를 맞아 쇄신의 필요성이 가장 크게 제기되고 있는 부분중 하나가 정부및 재정운용이다.

그동안 정부내에서 빚어진 기구및 예산늘리기 경쟁, 비용개념 결여, 경쟁부재와 무사안일, 책임부재 등은 정부의 생산성을 낮추고 비효율과 낭비를 유발하는 고질적인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가 재정 측면에서도 비효율이 쌓여있는데다 정부지도자의 재정마인드 결여가 낭비적인 재정운영의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비효율과 낭비를 근절하고 '작고 효율적인 정부' 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기구와 역할을 혁신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이와함께 예산구조의 대청소 작업을 벌여야 하며, 이를위해 대통령 직속의 '재정개혁위원회' 를 설치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의 문제해결능력과 신뢰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방만한 정부 운영과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면서 국민의 변화하는 기본욕구를 수용하려는 노력이 가시화되지 못한 나머지 정부기능은 국민이 기대하는 공공문제 해결에 있어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책 선택의 범위가 좁은 동맥경화증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말로만 '작은정부' '효율적 정부' 를 외칠뿐 그동안 정부기구와 재정규모는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의 추가 개입이 필요하다거나 어떤 문제가 사회 현안으로 대두될 경우 기구를 새로 만들어 문제에 대응하는 접근방식이 타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부문의 생산성은 진전이 없으면서 기구의 신설이 이뤄질 경우 정부부문의 생산성은 더욱 낮아질 수 밖에 없다.

또한 공공성 확보라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상업적 성격을 띤 사업들을 여전히 정부가 직접 생산.공급하고 있는 점도 정부 기구의 비대화와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기업들은 비효율적으로 생산된 서비스를 국민들에게는 원가 이하로 공급하고, 이과정에서 발생한 적자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부서 (조직) 할거주의 현상과 이에따른 부처간 영토확장 경쟁으로 인해 민간부문에 대한 과도한 규제와 간섭.정부 기능의 중복 현상등이 불식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력과 예산의 팽창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경우 영토확장 논리로 인해 특별 지방행정기관을 확대 설치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공무원으로 임용된 다음에는 부정과 비리를 범하지 않는한 평생직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종신고용의 인사제도로 인해 공무원들의 능력발전과 효율적인 업무수행을 촉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 결과 정부.공기업부문의 경우 엄격한 신분보장으로 인해 경쟁적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가운데 '한번 들어가면 정년까지는 타의에 의해 물러나지 않는다' 는 안일한 근무자세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향상되지 못하고 비만해진 이유는 공공부문이 외형적으로는 공익을 앞세우고 있으나 실제 운영과정에서 주인의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의식 결여는 비용절감유인 결여와 결부되면서 정부활동에 대한 합리적 비용 개념의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은 총량적 의사결정 방식 (거둔 만큼 쓰고, 쓸만큼 거둬 들임) 의 양태, 그리고 정치적 의사결정 (특수이익의 대변) 을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비효율적 요소가 잠복돼 있음에도 이의 개선이 더딘 것은 공공부문 활동에 대한 정보 (예, 생산함수)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데다 통제 메카니즘 (예컨대 감사.평가, 국회의 감시, 여론.시민단체의 독려) 이 현상유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나라 중앙정부 일반회계와 재정투융자특별회계를 기준으로 예산의 50% 내외가 예산과정을 통해 용이하게 제어할 수 없는 소위 경직적 경비로 구성돼 있다.

특히 공공문제 해결을 위한 탄력적 재정활동을 제약하는 보다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는 재원할거주의로 인한 사전적 재원배분구도의 고착화 현상이다.

최근 수년간 특정부문의 구조조정 노력의 일환으로 예산배분의 규모를 조세수입 또는 지출 규모와 연계하여 사전적으로 확정하는 작업이 전개되어 왔다.

이런 사전적 재원 배분 확정이 특정 집단의 정치 과정을 통한 끈질긴 이익투입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라면 분명 공공재원의 효율적 배분을 제약할 여지가 있다.

사실상 특별법 제정을 무기로 특정 분야에 대한 사전적 재원배분을 도모하는 것은 '우리 분야가 제일 중요하다' , '우리 분야에 지출의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는등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지출의 우선순위를 균형있게 고려하지 않는 소위 '섹터 이기주의' 또는 재원할거주의의 양상을 띈 경우가 많다.

사전적 재원배분구도가 고착될 경우, 재정운영의 탄력성을 상실하여 정치.경제 환경변화에 수반하는 재정의 보편적 대응능력을 약화시킬뿐 아니라 확보된 재원의 사후관리 노력이 미흡해 재원관리의 비효율이 노정되는 가운데 해당부문의 일정 정책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도 재원배분구도의 복원이 어렵게 되는 수가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정부의 대형 국책사업 선정이나 사전적 재원분할 구도획정 과정, 그리고 대규모 정책실패의 이면에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지도자의 재정마인드 결여가 주요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 선거.총선.지방선거 등 정치적 경쟁을 거치면서 정치권의 대 (對) 국민공약이 옥석을 가리지 않고 정부예산에 수용됨으로써 재정의 생산성이 낮아지고 예산의 구조적 경직성이 심화되는등 우리나라 예산이 전반적으로 동맥경화증에 걸린 상태라고 진단할 수 있다.

끝으로 사고가 터졌을 때는 기술적.미시적 측면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으나 본질적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은 결과 무책임한 정책구상이나 전시효과적 사업추진이 잦아 자원배분 비효율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

이런 풍조하에서는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는 '면피적' 근무자세와 정책실패가 반복적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또한 과거에 대한 성찰과 이를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 결여될 수 밖에 없다.

<대표집필=오연천 서울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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