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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모델 찾기] 학원 없는 농촌에 연중무휴 종일 ‘돌봄 학교’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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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면 ‘불은동산’ 못 다니게 한다~.”

불은초등학교 교사들은 방과후에도 학교에 남아 아이들을 보살피는 ‘ 돌봄 학교’를 운영한다. 27일 재미동포 신은혜(27) 강사가 6학년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강화=조문규 기자]


27일 오후 5시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불은초등학교 5학년 방과후 교실. 신현태(33) 교사가 장난 섞인 말을 하자 교실을 뛰어다니던 나영재(11·5학년)군 등 6명이 조용해진다. 요즘 학교 노래방에서 트로트 ‘어머나’를 부르는 재미에 빠진 황혜진(11)양은 “못 다니면 큰일 나요. 학교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하는데…”라며 눈을 껌벅인다. 불은초등학교는 강화읍내에서도 자동차로 20여 분을 가야 하는 외진 농촌 지역에 있다. 학부모 5명 중 4명은 농민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교생 77명이 방과후에 공부를 하고 특기 적성을 키우는 불이 꺼지지 않는 ‘연중 돌봄 학교’다. 이 학교는 농촌의 특성을 살렸다. 논일과 밭일은 물론 가축을 키우느라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농민들의 시름이 크자 학교가 나섰다. 방과후는 물론 주말과 방학에도 교사들이 아이들을 돌보며 가정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배드민턴대·탁구대를 비롯해 책 8000여 권이 있는 도서관, 노래방 기계까지 있어 학생들은 학교를 ‘불은동산’이라고 부른다.

혜진이는 오전 8시에 등교해 오후 6시까지 학교에서 10시간을 지낸다. 1교시 전에는 전교생 영어 회화 프로그램 수업을 20분간 듣는다. 정규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드림영어·수학’반에서 공부한다. 수업이 끝나면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배드민턴도 친다.

‘놀토(노는 토요일)’에는 선생님과 강화 유적지를 답사한다. 어머니 최혜순(45)씨는 “혜진이를 돌봐야 해서 일 다니기가 부담스러웠는데 퇴근 시간까지 학교에서 맡아 줘 한시름 놨다”고 말했다. 신 교사도 “혜진이가 명랑해졌고, 수학도 매번 100점을 받고 있다”며 “다른 학생들도 혜진이와 비슷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연중 무휴로 돌본다=불은초등학교는 전교생 중 한부모·기초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25%(17명)나 된다. 2007년 9월 초빙 교장으로 온 장포환(58) 교장은 어려운 환경의 학생을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구상을 했다. 그는 “부모들은 애들을 봐 줄 여건이 안 되고 주변에 사교육 시설도 없다”며 “공교육 본래의 기능인 교육·복지·문화 기능을 살리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학교에서 배우는 연중 무휴 돌봄 학교’를 착상했다. 초빙 교사 2명도 설득해 데려왔다. 17쪽의 ‘돌봄 학교’ 기획서를 만들었고 마침 지난해 12월 교육과학기술부 농어촌 돌봄 학교에 지원해 선정됐다. 곧바로 스쿨버스를 운영하고 아이들의 통학을 해결했다.

2학년 김찬엽(8)군은 “1, 2학년 19명이 보육교실에서 오후 7시까지 독서·체육·특기 적성을 듣고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간다”고 말했다. 찬엽의 어머니 한남정(35)씨는 “선생님이 방과후에도 가르쳐 주고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놀 수 있어 아이가 집에 빨리 오는 것을 싫어한다”며 웃었다. 3~6학년은 기초학습 부진아 6명을 두 개 반으로 나눠 일주일에 네 번 일대일로 국어·수학 맞춤형 지도를 한다. 성적이 처지면 교사들이 놀토에 집을 방문해 과외를 해 준다. 교사들이 교대로 주말 봉사를 한다.

◆교사가 농촌 학교의 힘이다=2년 전 장 교장이 돌봄 학교를 제안했을 때 교사 11명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오후 4시면 퇴근하는데 저녁까지 일에 시달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진 곳이어서 방과후 학교 지원 외부 강사가 한 명도 없자 생각을 바꿨다. 교장·교감이 솔선해 아이들을 가르치자 교사들도 따랐다. 김용직(46) 교사는 “모든 프로그램은 개인별 학습카드에 적어 수시로 업데이트해 일 부담이 작고, 학생들은 수준별로 지도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됐고 성적이 오르는 아이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임현욱 기자

◆돌봄 학교=맞벌이 부부나 저소득층, 농어촌 가정의 자녀를 대상으로 수업 전과 방과후, 주말, 방학 기간에 학교에서 교육과 보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전국 378개 교를 ‘농어촌 연중 돌봄 학교’로 선정해 298억원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도시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돌봄 학교도 운영한다.

모교 자원한 장포환 교장
“학습·문화·복지 동시 해결 작지만 강한 학교”

불은초등학교 장포환(사진) 교장은 강화도 공모 교장 1호다. 불은초등교는 그의 모교다. 1964년 졸업한 장 교장은 “올해 신입생은 51년 후배”라고 말했다.

-공모 교장에 지원한 이유는.

“이전의 교장들은 최소 의무 기간인 1년6개월만 채우고 전근을 갔다. 사택에 살아야 하는 데다 여건이 좋지 않아서다. 학부모와 학생은 책임지고 학생을 보살펴 줄 선생님을 원한다. 모교에서 교장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중 무휴 학교’ 개념이 신선하다.

“농촌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학교에서 책임지고 가르치자는 개념이다. 마침 교과부에서 돌봄 학교를 지원한다고 해 신청했다. 3년 동안 연간 평균 6000만원을 지원받게 된다. 75년 전통의 불은초등교는 한때 전교생이 700명이 넘었지만 10분의 1로 줄었다. 학습·문화·복지를 해결하는 작지만 강한 학교로 만들겠다.”

-다른 학교에도 보급할 수 있나.

“교육 여건이 열악한 곳은 권장할 만하다. 학부모의 반응이 좋다. 반대하던 교사도 학생의 변화를 보며 힘을 얻고 있다.”

임현욱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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