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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 복식회계장부 작성법 아는 마종안옹 생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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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최초로 민족자본 형성의 주역이었던 개성상인들이 썼던 사개치부 (四介治簿) 를 아십니까.” 일제의 식민지정책으로 흔적없이 사라졌던 국내 토종 회계방법인 개성상인의 사개치부법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어 화제다.

자신이 죽기 전에 사개치부법을 전수하는 것이 꿈이라는 마종안 (馬鍾安.88.서울대방동) 씨가 바로 그 주인공. 1934년 개상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개성에서 상점일을 배운 馬씨는 해방이후 월남한 뒤 30여년간 개인사업.인삼재배 등을 해오다 최근 은퇴한 개성상인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사개치부 작성법을 잊지않기 위해 한지로 장부를 손수 만들어 이를 작성해오고 있다.

사개치부란 봉차 (捧次.오늘날의 차변에 해당).급차 (給次.대변에 해당).손.익 등 4개 목록을 기준으로 정리한 우리 고유의 복식부기 회계장부 기록법. 현대식 회계장부 못지않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주는 것과 받는 것 등 거래의 네가지 요소를 통해 재물의 이동과 변화를 빠짐없이 기록한게 특징이다.

거래액수 뒤에 입금은 상 (上) , 출금은 하 (下) , 완전히 청산된 거래는 △ 등의 독특한 기호를 사용해 별도 계산없이도 정확하게 거래내역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개성상인들이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창안해 '송도 사개치부' 라고도 불리는 이 회계법은 학계에서도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서양식 복식부기보다 약 2백여년 앞선 민족유산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개치부는 그 뛰어난 과학성으로 1910년대까지 천일은행 (상업은행의 전신) 등에서까지 회계작성법으로 활용돼 오다 일제가 신식 서양회계법을 강요하면서 점차 사라졌다.

현재 조흥은행 금융박물관 등에 당시 장부가 일부 보존돼 있을 뿐이다.

馬씨는 "주변에서 사개치부를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뜨더니 이제는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며 "이의 보존과 전수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 고 말했다.

=== 한국개발연구원 부설 국민경제연구원의 김영수 (金永秀) 연구위원은 "사개치부는 선진적 경영기법이 담겨있는 세계 최초의 복식회계 장부지만 그동안 기록으로만 남아있었다" 며 "馬씨가 이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마지막 사람인 만큼 앞으로 이에 대한 완전한 전수.복원를 통해 후속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송상 (松商.개성상인) 출신들은 이같이 과학적 경영기법을 사용해온 선대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해방이후에도 이회림 (李會林) 동양화학 회장.허채경 (許采卿) 한일시멘트 회장 등 유수의 기업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馬씨는 최근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하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개성상인의 정신이 새삼 필요하다며 "개성상인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담밖으로 고기굽는 냄새가 새어나가면 손가락질을 받았다" 며 "저축하며 검소하게 살았던 옛날 개성상인을 우리 기업인들이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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