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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현지르포…"쌀을 달라" 온가족 사재기 나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자카르타의 남대문 시장격인 타나 아방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수크리 아데난 (43) 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외환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스라얀 플라자 등 고급 백화점은 돈 많은 화교계 고객들로 흥청거리지만 재래시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생필품을 구하려면 전쟁을 치러야 한다.

수크리의 가족은 오전5시부터 전쟁터로 나섰다.

"집사람은 식용유 가게에서, 작은 아들은 쌀가게 앞에서 지금도 줄을 서고 있다" 고 수크리는 말한다.

집안에 있던 15만루피아 (19달러) 를 몽땅 들고 나갔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물가를 통제하는 5대 생필품은 쌀.식용유.설탕.등유.생선. 쌀은 2년 연속 흉작에다 경제위기까지 겹쳐 정부 고시가격인 ㎏당 2천5백루피아를 훨씬 넘겨 3천5백루피아까지 폭등했다.

쌀 2백만t을 베트남에서 긴급 수입한다는 정부 발표도 중간상인의 농간을 잠재우지 못했다.

정부는 식용유의 원료가 되는 팜유 수출을 중단한다고 선언, 내수용으로 돌리고 있지만 식용유 가격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밥을 짓는 데 쓰는 등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원유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매년 10조루피아의 보조금을 투입, 국제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등유를 공급해 왔다.

하지만 IMF가 보조금 지원중단을 요구하면서 등유도 사재기 소동에 휩싸였다.

수크리는 "물가폭등보다 더 큰 문제는 집에 돈이 없다는 것" 이라고 말한다.

봉제공장에 다니는 큰 아들과 딸은 두달째 임금을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반대로 전기.버스요금 등은 다음달부터 줄줄이 오르기로 돼있다.

현재 자카르타 주변의 실업자는 2백40만명. 아시아 통화위기로 외국에 취업나갔던 근로자들도 줄지어 귀국중이다.

자카르타 포스트지의 빈센트 링가 경제담당 국장은 "연말까지 실업자가 1천만명을 넘어설 것" 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수하르토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IMF 피셔 부총재는 회담 직후 "수하르토 대통령이 경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며 "곧 인도네시아가 중대조치를 취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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