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공동체] “아내는 외국계” 셀프 다큐로 찍은 사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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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비디오카메라를 접한 다문화 가정 부부가 미니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선보였다. 외국인 주부와 한국인 남편·일반 시민 사이에 의미 있는 ‘소통’이 이뤄졌다.

자신들의 일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다문화 가정 부부들이 이달 12일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팔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더욱 돈독한 사랑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연국-보티 죽 마이, 강호규-로요 마릴루 브라보, 최재선-주비 야톤 부부. [최준호 기자]

 이달 12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아트레온. 9일부터 16일까지 전체 9개 영화관 중 4개 관에서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진행된 가운데 5관(7층)에서 ‘특별한 시사회’가 열렸다. 오전 11시30분~오후 1시 모두 8편의 영화가 상영됐다. 상영시간 10분 안팎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었다. 100여 명의 관객 중에는 외국인들도 드물게 눈에 띄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한국에 살고 있는 다문화 가정 부부 3쌍과 한국인 1명, 일본인 여성 1명이었다. 3쌍의 부부는 남편은 모두 한국인이고, 아내 중 2명은 필리핀인, 1명은 베트남인이었다. 이들은 각각 자기 작품의 주연·감독·제작자로서 ‘1인 3역’을 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다뤘다. 강호규(41)씨는 필리핀 출신 아내의 생활을 담은 ‘마릴루는 할 수 있어’란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비디오카메라를 배워 작품을 만들다 보니 힘들긴 했지만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강씨의 아내 마릴루는 한국에 온 뒤 추위와 음식 때문에 고생한 사연 등을 ‘기다리면 좋은 일이’란 작품에 생생하게 담았다. 강씨는 영화를 만들면서 아내를 더 잘 이해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시집온 여성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장성주씨가 만든 영화 ‘나에게도 아내가 생겼습니다’의 초기 화면.

키가 훤칠한 미남이면서도 노총각 신세를 면치 못했던 장성주(36)씨는 ‘나에게도 아내가 생겼습니다’란 작품을 통해 베트남 출신 아내(팜티 닙)를 맞은 기쁨을 표현했다. 필리핀 출신인 주비 야톤(32)은 ‘올 마이 라이프(All my life)’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최재선(38)씨는 ‘히야신스 재선과 튜울립 주비’란 이색 제목을 통해 자신과 아내를 꽃에 비유하며 ‘찰떡궁합’임을 내비쳤다. 그는 이 영화에서 “내 이상형은 바로 당신인데 당신의 이상형은 누구세요”라며 아내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했다.

이번 시사회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이대영)이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이주 여성 영화제작 워크숍-부부 카메라 일기’의 결과물로 마련됐다. 진흥원은 2007년 시작 때부터 지난해까지는 결혼 이주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었다. 하지만 올해 처음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교육은 1월 9일~2월 14일 ‘인천 여성의 전화’가 개설한 아이다마을에서 인천시내에 거주하는 다문화 부부 4쌍을 대상으로 매주 주말에 무료로 진행됐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김태연 사회교육팀장은 “말이 잘 안 통하고 이질적 환경에서 성장한 부부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영상매체를 통한 소통이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같은 ‘참여 영상’은 사회의 약자들이 세상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는 효과도 크다”고 밝혔다.

최준호 기자 , 임지현 중앙일보 대학생NGO기자(서울대 사회교육과 4년)

◆참여 영상=언론에 등장하기 어려운 소외층, 소수자들에게 영상 제작 훈련을 시켜 자신들의 삶과 주장을 직접 영상으로 만들어 세상에 알리게 하는 운동. 참가자들에게 자긍심과 시민적 주체성을 일깨우는 대안 미디어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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