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시시각각

귀는 열려 있지만 입은 닫을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2면

몇 달 전만 해도 그런 험한 꼴 겪을지는 개들도 몰랐을 터다. 고급 승용차가 뻔질나게 드나들던 대군 댁 앞마당에 빈 밥그릇 채워줄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는 걸 보면서 개들이 먼저 ‘권력무상’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멀지 않은 곳에 그 권력의 원천이었던 동생이 산다지만 그 역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석 자나 빠진 코로 형님 댁 개들까지 돌볼 겨를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개들에게는 안된 말이지만 이 블랙 코미디가 피날레까지 가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대군 댁이 잡초 무성한 흉가로 바뀌더라도, 그 잡풀이 동생 저택까지 우거져 폐가를 만들더라도 “이권개입이나 인사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던 공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살아 숨쉬는 교훈을 줘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학습 탐사의 맨 앞줄에 서야 할 사람은 지지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요사스러운 입을 놀려 권력자를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한 측근들이다. 모두 그릇된 길이라 경고하는데 억지 궤변으로 그 길에 다리를 놓았다. 권력자는 그들에게 충성의 다리를 짓게 할 만큼 영리했지만 그 다리가 딱 임기 동안만 버틸 정도의 내구력을 지녔다는 걸 알아볼 만큼 현명하진 못했다.

그들은 지금도 억설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것이 부메랑이 돼 주인의 뒤통수를 강타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생계형 부패”라는 건 정신감정이 필요한 말이다. 생활고에 절망한 중년 가장들이 강물에 뛰어들 생각까지 하면서도 남의 물건 훔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정상인 거다. “망신 주려는 의도”란 것도 어불성설이다. 설령 그런 뜻이 없지 않더라도 제3자나 할 수 있는 말이지 자신들의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편든답시고, 의리 지킨답시고 하는 말들이 주인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킨 바로 그 원인성 세균과 한 종류라는 걸 모르는 게 딱하다. 스탈린이 잔혹한 숙청으로 소비에트 독재를 구축하고 있을 때 그를 지지하던 서구 지식인들은 당혹감 속에 이중 잣대를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버나드 쇼는 이렇게 썼다. “진취적인 나라가 정직한 국민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인도적으로 몇몇 착취자와 투기자를 처단할 때 우리가 도덕적 태도를 취하며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썼다. “소비에트에 대항하는 악랄한 적들의 태도를 보더라도 모스크바의 재판이 체제 전복 음모가 있었음을 밝혀낸 건 분명하다.” (폴 존슨, 『모던타임스』)

많이 듣던 논리 아닌가. 자신들만 정의이고 그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용인된다는 식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니 청와대 시스템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고 짐승들 아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온라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그들의 머릿속까지 뭐라 할 뜻도 없고 권한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가 말이 돼 나올 때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부지불식간에 후임자와 그 측근들까지 오염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그들마저 나도 그렇게 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 이 땅의 미래가 어찌 되겠나. 진정 그걸 걱정한다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앞서 남의 생각을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 속담이 도움이 되겠다. “귀는 늘 열려 있지만 입은 닫을 수 있다.”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