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아내 만나려 20차례 밀항시도 60대 노인 또 붙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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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독일 함부르크에 남겨둔 현지인 아내와 자식을 만나기 위해 30여년동안 열아홉번이나 밀항을 시도했던 60대 노인이 스무번째 밀항길에 올랐다가 또 붙잡혔다.

부산지검 공안부는 9일 정상실 (鄭相實.63.경기도부천시오정구고강본동) 씨를 밀항단속법위반죄로 구속기소했다.

鄭씨는 지난해 7월19일 인천항에서 화물선에 숨어 독일로 밀항하려다 일본 오사카 (大阪)에서 경찰에 적발돼 지난해 12월28일 강제귀국 당했다.

검찰은 전과기록에 나타난 鄭씨의 밀항기도는 열다섯번이지만 기록에 나타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이번이 스무번째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鄭씨가 독일땅을 밟은 것은 28세 때인 63년. 외항선원으로 일하다 독일 함부르크항에서 하선, 4년동안 조선회사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현지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그러나 불법체류가 드러나 만삭의 아내를 남겨둔 채 강제 귀국했다.

이후 鄭씨는 독일의 이웃집 할머니가 보내온 편지를 통해 아내가 아들을 낳았으며 안면이 있던 한국인 유학생이 아내를 가로채기 위해 자신을 불법체류자로 신고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에 대한 증오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한사코 독일로 가는 밀항에 매달렸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엄격히 제한된데다 불법체류 전과 때문에 독일 재입국이 불가능했다.

이때부터 鄭씨는 부산.인천항을 오가며 독일 선박만 나타나면 숨어들어 밀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 중간 기착지에서 붙잡혀 한국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밀항 과정에서 鄭씨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캐나다.미국.쿠바.바하마.칠레.바레인.뉴질랜드 등 모두 70여개국을 거쳤지만 독일 땅은 끝내 밟지 못했다.

밀항한 배가 좌초하면서 흘러간 멕시코에서 현지여자와 또한번 가정을 이뤘고 해적을 만나 총격전을 벌이기도 하는 등 鄭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사건들로 점철됐다.

그동안 밀항으로 17년간을 감옥에서 보낸 鄭씨는 82년 소설가 이신현씨의 도움으로 자신의 밀항 역정을 담은 소설 '가고 또 가고' 를 도서출판 다나에서 펴내기도 했다.

鄭씨는 검찰조사에서 "처음엔 한시바삐 가족들 곁으로 가고싶어 밀항길에 올랐으나 이제는 어차피 한평생을 밀항으로 보낸 몸이니 끝까지 배로 독일 땅을 밟고 싶다" 고 말했다.

부산 = 정용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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