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열려라 참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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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이어지는 ‘아빠 소리 들어보기’ 꼭지는 아빠의 몸과 마음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공감해보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빠의 모습과 잠 덜 깨어 베개 자국 선명한 아빠의 얼굴에서 가족을 위한 노고를 읽어내기도 하고, 폭 안긴 따스한 가슴에서 울려 퍼지던 콩닥콩닥 맥박소리를 사랑의 소리로 기억해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을 혼내던 아빠의 모습을 분노의 소리로 떠올리기도 하고, 엄마와 싸우다 들켜서 미안해하던 아빠의 표정에 연민이라는 이름을 붙여 공감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공감한 내용을 발표할 때 보면 아이들 취미가 아빠 관찰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몸의 소리를 감정과 연관 지어 너무도 또렷이 잘 기억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아버지로 삼행시를 지어보는 순서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아이들은 금방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잘해야 된다는 부담감으로 머뭇거리는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경우는 생각의 심지에 불만 댕겨주면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온갖 상상이 나래를 타고 사방팔방으로 폭발해 나옵니다. 또렷한 눈망울의 한 아이가 손을 들어 발표합니다. “아빠 힘내세요. 버팔로보다 힘센 제가 있잖아요. 지구 아니라 전 우주에서 제일 행복한 아빠로 만들어 드릴게요.”

개중에는 엉뚱 솔직한 아이도 있습니다. “아빠, 할아버지한테 물어봤는데요. 버릇없는 건 지금의 저보다 옛날에 아빠가 더 했대요.”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순간입니다. 어느덧 말투, 행동, 생각하는 방식, 게다가 부모의 기대와는 다르게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까지 아이는 부모의 판박이입니다.

마무리는 평화를 부르는 하와이인들의 지혜로 널리 알려진 ‘미용고사’로 편지 쓰기입니다. 미안한 일, 그리고 용서받아야 할 일을 생각하느라 아이들은 여느 때보다 조용합니다. 발표가 이어집니다. “아빠, 저번에 사달라는 것 안 사준다고 투정 부린 거 미안해. 아빠 딸 용서해 주는 거지. 항상 예뻐해 주고 잘 해주는 것 다 알아요. 고맙습니다. 아빠, 정말 정말 사랑해요.” 연이어 아빠에 대한 둘도 없는 자랑의 표현들이 쏟아집니다. 최고로 멋진, 너무너무 자상한 등등. 그리고 모두 외칩니다. “아빠, 사랑해요.”

아이들의 눈이 어느덧 맑아져 있습니다. 조금 더 열린 안목으로 아빠를 바로 보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땐가 참된 깨침의 열린 마음으로 아빠를 온전히 이해할 날이 오겠지요.

선업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