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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이 가진 재미에 한국적인 감성 잘 버무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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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06면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는 미국 리얼리티 쇼의 원본 포맷을 그대로 가져와 만들었지만 참가자들의 캐릭터와 패션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만의 정서를 드러냈다. 사진은 우승을 차지한 이우경씨의 의상.

“축하합니다. 프런코씨, 우승입니다.”
온스타일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의 첫 시즌은 성공이었다. 토요일 밤 12시, 어려운 시간대에도 방영 내내 평균 2%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케이블 TV 프로그램 중 1위를 지켰다. 수치상으로도 그렇지만 마지막 회가 방영되자마자 우승자의 작품에 대한 표절 시비가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는 점이 돋보였다. 지상파인 MBC ‘무한도전’이 ‘프런코’의 장면들을 패러디할 정도였다. 미국의 리얼리티쇼를 본뜬 한국판들이 꾸준히 시도됐지만 도무지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약진이었다.

THIS WEEK HOT: 물 건너온 리얼리티쇼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성공 비결

“진보한 쇼는 박수 받고, 진부한 쇼는 외면당합니다”
하지만 ‘프런코’의 성공 비결은 진보와 진부 사이의 어디쯤엔가 있다. 2004년부터 미국 브라보 TV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런웨이’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온 ‘프런코’는 이미 5시즌이나 진행돼 시청자에게 익숙해져 있었다. 시청자는 적응기를 거치지 않고 재빨리 쇼의 본질인 창의성 경쟁과 인간관계로 몰입할 수 있었다. 700쪽에 이른다는 제작 노트 바이블에 따라 쇼의 포맷을 그대로 옮긴 ‘프런코’의 화면과 진행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우철 PD는 “어쭙잖게 한국화하는 것보다 원본에 충실했다”며 한국 쇼들이 남발하는 자막이나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고 밝혔다.

출연자들도 이전의 리얼리티쇼에서 볼 수 없었던 튀는 캐릭터와 말투·갈등 같은 걸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역시 오리지널 쇼를 보며 ‘학습’한 결과다. 덕분에 회당 7억원을 쏟아붓는 미국 쇼의 10분의 1 정도도 안 되는 제작비를 가지고도 시청자들로부터 ‘비슷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 명은 탈락하고 한 명은 우승합니다”
패션을 놓고 경쟁하지만 시청자가 재미를 느끼는 건 오히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구도다. 미국판 ‘프로젝트 런웨이’나 ‘도전 수퍼모델’이 인기를 얻은 건 시즌별로 악동 캐릭터들이 꼬박꼬박 등장하며 양보하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리얼리티쇼가 가장 약한 부분이었다.

‘프런코’는 중간에 부잣집 딸 이미지의 최혜정을 놓고 ‘빽’이 있다며 편이 갈리는 커다란 갈등구조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한국 사람 특유의 기질 덕분에 파이널 3에서 쓰러진 후보자의 옷을 다른 후보들이 도와주거나 탈락한 후보자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미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할 장면들이 나오기도 했다. 똑같은 포맷을 놓고 자연스럽게 ‘토착화’가 이뤄지는 장면들이었다.

이 PD는 “한 달 동안 좁은 공간에서 휴대전화나 인터넷도 없이 합숙했다. 옷은 하루 만에 만들어야 했다. 카메라는 눈뜨면 하루 종일 출연자들을 따라다닌다. 이 정도 압박감이라면 연출하지 않아도 숨겨졌던 본성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생겨나리라 믿었다”고 했다.

“나라면 이런 옷은 입지 않을 것 같아요”
‘프런코’ 성공의 배경은 아마추어 디자이너의 작품 경쟁을 흥미롭게 지켜볼 정도로 높아진 소비자의 눈높이다. 웬만한 디자이너 이름은 줄줄 꿰고 매 시즌의 ‘잇(It)’패션과 ‘간지’에 목숨 걸 정도로 패션 피플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한다면 “나라면~, ~같아요” 같은 주관적이고 모호한 심사평들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리얼리티쇼를 보는 묘미는 시청자가 그저 “좋다, 나쁘다” 정도로 뭉뚱그려 느껴지는 자신의 안목에 대해 전문가들의 기술적인 지적을 들으면서 배워나가는 순간이다. 공감이 딱딱 느껴지는 미국 쇼의 디테일한 심사평들에 비한다면 “섹시하지 않아요” “입고 싶지 않아요” 같은 평들은 속을 후련하게 만들지 못했다.

“런웨이를 떠나셔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던 건 이소라의 번역체 말투였다. ‘런웨이에 온 걸 환영해요’라는, 문법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어색하게 들리던 그 말이 시즌 중에 ‘런웨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로 조금만 고쳐졌는데도 확실히 부드럽게 들렸다. 하이디 클룸과 캐릭터가 다른 이소라에게 클룸의 행동과 말투까지 따라 하도록 만들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셈이다. 결국은 어색한 말투 자체를 웃으며 즐기는 것이 이 쇼의 묘미가 되기도 했지만 이소라가 어색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반대로 미국 쇼에서 팀 건이 따뜻하게 출연자들을 감싸는 역할이었다면, 같은 역할의 간호섭 교수는 “떡볶이 같다” “신발 주머니 같다”는 비유를 즐기는 깐깐한 캐릭터로 자기 성격을 드러내며 오히려 인기를 모았다.
오리지널의 고유한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진행자들의 개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이다.

“행운을 빌어요.”
한국판 ‘아메리칸 아이돌’도, 한국판 ‘수퍼모델’도 신통치 않았던 한국에서 정식 라이선스를 얻은 ‘프로젝트 런웨이’는 성공했다. 이건 거꾸로 보자면 한국 리얼리티쇼의 창의성에 대한 한계를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PD는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낼 창의력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하드웨어 부분의 전문인력이 꾸준히 양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고 했다.

‘프런코’의 성공은 시들해지는 듯했던 리얼리티쇼 전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줌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고유한 한국형 리얼리티쇼로도 히트작을 발굴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불러일으킨다. 물 건너온 리얼리티쇼의 활약이 토착 리얼리티쇼에 어떤 자극이 될 수 있을까. 케이블TV의 리얼리티쇼 분야는 ‘프런코’ 덕분에 흥미진진해졌다. 시즌 2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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