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기업이 접은 사업 일으켜 세웠다”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대기업이 손을 뗀 사업을 맡아 ‘옥동자’로 키워낸 중소기업이 있다. 경기도 화성에 자리잡은 파트론(PARTRON)이 그런 회사다. 2003년 5월 삼성전기의 유전체 필터 사업부분이었다가 분사 독립한 지 6년 만이다. 유전체 필터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주파수 중 필요한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정밀장치로 중계기나 휴대전화의 필수부품이다.

휴대전화 부품업체 파트론 #아이템 7개 중 5개가 국내시장 1위… 칩안테나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고수

삼성전기는 2001년 세계적인 IT거품 붕괴에다 경쟁사들에서 초소형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자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한 이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필터 연구팀에 분사를 제안한 이유다. 김종구 파트론 사장을 비롯한 삼성전기의 연구원들이 당시 홀로서기의 주역들이다.

파트론의 2008년 매출액 증가율은 70%(692억원→1174억원)였다. 세계적인 경기 동반침체를 겪는 올해에도 목표매출을 54% 증가한 1811억원으로 늘려 잡았다. 영업이익률도 최근 3년 동안 16~17%였다. 세계 주요 부품업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1%일 뿐이다. 대우증권 박원재 연구원은 “파트론의 지난해 영업이익률 17.3%는 부품업체로선 놀라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이 회사의 주력 생산 부품 7개(유전체 필터, 아이솔레이터, 칩안테나, GPS용 패치안테나, 내장형 안테나, 수정발진기, 카메라 모듈) 중 5개는 국내시장 점유율 1위다. 특히 칩안테나의 매출액은 210억원 선으로 회사 전체 매출액의 18%를 차지한다.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전자업체에 납품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65%다. CEO의 발 빠른 대응이 창업 초기 회사의 연착륙을 이끌었다. 분사 직후 김종구 사장은 평소 알고 지내던 LG와 팬택 계열 최고경영진의 도움을 받아 거래선을 확대하면서 매출을 키웠다.

2003년 첫해 128억원의 매출과 4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때 회사는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었다. 파트론은 주력 상품인 유전체 필터 부품을 뛰어넘을 새로운 아이템 개발에 나섰다. 회사 이익금의 상당부분을 안테나와 카메라 모듈 등 새로운 제품의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이 제품들은 지난해 파트론 매출의 70% 이상을 담당할 만큼 효자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한때 삼성전기가 예상했던 대로 주력제품이었던 유전체 필터 시장에 한파가 몰아 닥쳤다. 2004년 봄부터 10개월 동안 적자 수렁에 빠졌다. 회사 전체에 일순 위기감이 감돌았지만 꾸준히 공들여온 안테나 부문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새로운 아이템이 새로운 시장을 뚫으면서 파트론의 활로도 뻥 뚫렸다.

연구인력이 주축을 이룬 이 회사는 기술개발력이 최대 강점이다. 본사 직원 247명의 64%인 159명이 연구원이다. 연구개발비는 매출액 대비 10.2%다. 김 사장은 “휴대전화 부품은 재료비 비중이 낮은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휴대전화 디자인이 자주 바뀌는 만큼 부품의 주기도 짧다”고 말했다.

핵심 기술 인력은 대부분이 삼성전기 시절부터 손발을 맞춰온 터라 특유의 팀워크를 발휘한다. 구성원의 주인의식도 남다르다. 파트론은 2006년 12월 코스닥에 등록하기 전에 입사한 임직원들에게 주식을 지급했고, 생산 품목별로 목표를 조기 달성하면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

삼성전기에서 분사하면서 기본적인 하드웨어도 좋았다. 먼저 감가상각을 다한 고가의 생산설비를 헐값으로 건네 받아 고정경비를 아꼈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에 있는 삼성전기의 부품 제조공장을 인수했던 점도 행운이었다.

파트론은 모든 부품을 이곳에서 생산한다. 회사가 생산하는 7개 부품 가운데 수정발진기와 카메라 모듈을 제외한 5개는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특성을 지녔다. 중국 공장의 근로자 인건비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근의 톈진, 상하이, 선전보다도 30%나 싸다고 권오용 IR파트장은 말했다.

나아가 아무리 가격 경쟁력이 있는 부품이라도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행히 중국 산둥공장은 거리적 이점 때문에 돌발성 주문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다. 중요한 기술을 요하는 생산 공장을 중국에 뒀다가 기술 유출이나 모방 가능성은 없는 걸까? 걱정 없다.

특허도 특허거니와 제품별로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원천기술 없이는 수시로 바뀌는 휴대전화 모델의 부품을 흉내 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파트론은 당분간 탄탄대로를 달릴 듯하다. 게다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도 성장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통상적으로 휴대전화 이용자 수가 전체 인구의 70%에 이르렀을 때 둔화되기 시작한다”고 대우증권 박원재 연구원은 말했다.

“주요 시장인 중국이 6억 명 안팎, 인도는 2억 명을 갓 넘은 가입자를 보유해 시장의 기회는 아직도 충분해 보인다.” 물론, 글로벌 경기침체로 휴대전화 등 완제품 제조업체들의 단가 인하 압력은 점차 거세지리라 예상된다. 파트론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런 외풍을 이겨내야 하는 처지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삼성전자(53%), LG전자(10%), 팬택 계열(6%)을 비롯한 국내외 250여 개사에서 매출을 올린다. 이런 든든한 반석 위에서 해외에서 매달 5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200만 달러를 해외에 지불한다. 더구나 해외 시장은 활짝 열려 있다.

“품질·가격 경쟁력 모두 우리가 최고”

Q&A 김종구 사장 “모든 직원은 일에 푹 빠져있다”

파트론 김종구(60) 사장은 1973년 삼성전자 TV 개발실에 입사한 이래 꼭 30년을 삼성맨으로 일했다. 2003년 삼성전기 부사장 시절 유전체 필터 사업부 인수 제의를 받고서는 한동안 망설였다.

당장 회사를 떠난다고 해도 생계 걱정은 없는 데다 몇몇 굵직한 기업으로부터 ‘러브콜’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이 분야의 기술 개발을 이끌어온 데다 후배들의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첫 출발선에 섰을 때나 선두를 달리는 지금이나 여전히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그를 뉴스위크 한국판 박성현 기자가 만났다.

분사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당시 삼성전기가 이 사업을 접으려고 한 건 당장 이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1년 후를 장담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유전체 사업은 분사하던 2003년만 해도 경영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이듬해부터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가장 어려운 순간에 미리 개발을 진행해 오던 아이템들이 이익을 내면서 위기를 넘겼다.

파트론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직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한다. 정말 열심히 하면 꿈에서라도 해결책이 찾아진다고. 가끔 그런 경험을 한다. 결국 얼마나 심취하고 몰입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본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인적, 물적 여건이 열악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우리는 출발도 늦은 편이다. 남보다 더 많이 뛰는 수밖에 없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아닌 걸 지워 나가다 보면 결국 목표했던 길을 찾게 된다. 우리가 늘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다.

직원들이 힘들었겠다.
창업초기엔 밤낮 없이 회사에서 일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면서 과로로 쓰러진 직원도 있었다. 워낙 업무가 많고 연애할 시간이 없다 보니 젊은 직원들의 사내 결혼 비율이 높게 나타날 정도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체력을 고려해 외모가 날렵해 보이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뽑는다.(웃음)

최고경영자와 임원들도 직원들과 함께했나?
CEO와 임원들이 어떤 자세로 일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주나 대주주가 회사 돈을 유용하는 등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직원들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가 있겠나? 윤리적인 면모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만 의사결정 과정에선 단호하면서도 신속한 결단을 내려야 직원들도 한몸이 돼 움직인다.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하는 이유는?
IT 부품사업은 휴대전화의 기종이 바뀔 때마다 부품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테나든 카메라 모듈이든 직전 모델에 들어간 부품을 다음 모델에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종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게 우리의 운명이다. 그래서 연구인력과 개발비의 비중이 크다.

칩안테나 외에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제품은?
삼성전자에 독점 공급하는 부품을 경쟁사에 공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테나 하나를 만들자면 특정 휴대전화의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알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같은 부품을 다른 회사에 동시에 공급해야 되겠는가. 따라서 이미 공용화된 부품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해봄 직하다. 범용성이 있는 광마우스나 전자나침반 등을 고려한다.

글로벌 불황을 맞아 납품 단가 인하 압력이 거세진 않나?
대기업이 무조건 깎자고 들진 않는다. 나름대로 타당하고 비용절감 요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경쟁사에 비해 품질 경쟁력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도 있다. 부품업체 입장에서 국내에 삼성과 LG 같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있다는 게 우리로서는 행운이다.

앞으로 시장 전망은 어떤가?
불경기라지만 휴대전화 사용자가 줄지는 않는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에서는 휴대전화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박 성 현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psh@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