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이이화가 산중서 띄우는 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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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재야사학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이화 (李離和.62) 씨는 역사연구의 대중화에 앞장서오고 있다.

그는 40여년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다는 뜻에서 고대부터 최근까지 우리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모두 24권에 담는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95년말 전북 장수에 내려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집필 장소를 전북 김제군 금산면 월정암으로 옮겼다.

제가 칩거하는 전북 김제군 금산면 동곡마을 월명암 뒤편 저수지에는 오늘도 오리떼가 무심히 물장난을 칩니다.

IMF의 시름을 초탈한듯 새해를 맞은 이곳에는 정적과 고요가 맴돕니다.

저는 산사 (山寺)에서 애써 현실문제에 초연하려 하면서 역사책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의 50년 현대사를 가장 찬란한 성장시대였다고 평가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에 세계적 성장모델이 어느날 문득 비웃음의 대상이 됐을까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정치.행정의 시행착오와 경제.사회의 방만.파행에만 화살을 돌려서는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오래되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와 완전히 파괴된 전쟁시기를 거쳐 오면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의욕과 근면으로 불과 50여년만에 세계사의 대열에 당당히 끼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우리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버렸고 멀쩡한 옷을 입다가 싫증나면 유행따라 쓰레기통에 넣었습니다.

절약과 절제를 모르는 낭비의 생활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했고 경제윤리는 마비됐고 졸부근성과 천민자본주의 의식으로 공동체의 삶도 파괴됐습니다.

지금은 산산히 부서진 우리를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할 시기입니다.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보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예전에도 국가의 위기는 무수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좌절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환란의 원인을 철저히 따지고 흐트러진 마음과 몸을 다잡았습니다.

재앙이나 전쟁이 있으면 임금이나 백성들은 술과 놀이를 중단하고 반성했습니다.

신라의 문무왕은 수년간 전쟁으로 국고 (國庫)가 텅텅 비고 백성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자 무기를 농기구를 만들었고 왕릉을 크게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절약 근검정신을 백성들이 잘 따라주어 몇십년만에 국고는 충실해졌고 통일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고려의 현종은 거란의 잦은 침입으로 백성들이 유리걸식하고 재정이 바닥나자 스스로 풍악을 중지했고 지배세력과 백성들도 절약과 근검으로 농업생산력을 높였습니다.

이는 몽골과 처절하게 항쟁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19세기 중엽 온갖 재해와 사치로 경제위기가 닥치자 흥선대원군은 금주령을 내렸고 사치스런 물건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구한말엔 국채 (國債)가 국가 1년 예산에 육박할 정도로 쌓여 나라가 넘어갈 판국이었습니다.

대구에서 먼저 금연.금주로 '나라빚 갚기 운동' 이 시작됐습니다.

전국의 애국시민들은 너나없이 담배를 끊고 금붙이를 내놓고 밥짓는 쌀을 덜어냈습니다.

기생들도 금비녀를 모아 국채보상을 위해 바쳤습니다.

이런 구국정신은 오늘의 귀감이요 시대정신의 발로요 역사의 거울입니다.

시대가 밀물과 썰물처럼 성쇠 (盛衰)가 거듭된다면 '성' 할 적에 절제하고 '쇠' 할 적에 매진하는 것이 지혜요 조화 (調和) 입니다.

지금은 바로 이러한 매진의 전환기입니다.

잘못된 관행은 바로잡고 좋은 전통은 살리는 것이 새 시대를 여는 길입니다.

용기와 의욕을 가지고 이 위기를 풀고 나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을 성취하는 시대도 맞이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자세입니다.

특히 제가 머무는 암자의 고요함은 재기 (再起) 의 마음가짐을 가르쳐줍니다.

불안과 패배의식을 훨훨 내던지고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되찾으라고 충고합니다.

시대의 잿빛 구름을 걷어내고 이 시대를 위대한 전환점으로 만들라고 말입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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