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달러도입 대미창구 유종근 전북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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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연말 '모라토리움 (지불유예)' 직전까지 치달았던 국가부도 위기속에서 급속히 부각된 인물이 있었다.

유종근 (柳鍾根.53) 전북지사다.

미국 재무부의 로버트 루빈 장관과 로렌스 스머스 부장관은 지난해 12월24일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한 (對韓) 지원협상에서 유종근지사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고 적시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경제학 교수.공무원등을 지낸 그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원칙에 충실하다.

그의 이런 경력과 소신이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시대를 맞아 미국의 신뢰와 지원을 얻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선 전북지사인 그는 金당선자 진영의 국제금융협상 자문역, 12인 경제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는등 金당선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그 자신은 "역할이 끝나면 지사로 돌아갈 것" 이라고 말하지만 새정부에서 경제.통상.금융분야의 주요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찮다.

편집자

유종근지사는 먼저 "외환위기는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 이라며 "연말의 위기상황은 잠시 넘긴데 불과하며 우리의 구조개혁조치가 미흡해 국제금융시장에서 등돌리게 되면 이제는 끝장" 이라는 얘기를 강조해달라고 했다.

정리해고제 문제와 관련, 그는 "누구보다 근로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金당선자가 정리해고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할 정도라면 어느정도 심각한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이라며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 외환위기는 과연 벗어난 겁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해 12월 외환위기때 IMF에서 서둘러 80억달러를 지원했고 우리는 구조개혁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현명치 못하게 부실 종금사처리를 우물쭈물하고 외환보유고도 솔직히 밝히지 않는등 거꾸로 가는 바람에 외국 민간금융기관의 외면을 자초했습니다.

그래서 1차방어선이 구축된지 20일만에 익사직전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선거가 끝나고 金당선자의 개혁의지가 확인되자 두번째 구출을 받아 위기는 모면했지만 우리가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세번째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다시 실패하면 삼진아웃되는 겁니다. ”

- 그런데도 마치 위기는 끝난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라토리엄으로 가면 멕시코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처참한 꼴이 됩니다.

석유 한방울 안나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5대은행이 모여 만기부채를 한달 연장해주고 신디케이트 론을 한다고 하지만 이 은행들은 한국에 돈이 많이 물려 있는 은행들입니다.

우리에게 물려있지 않는 민간금융기관들이 새로 대출해주고 투자해야 살아날 수 있는데 아직 그렇게 낙관할 증거가 안나옵니다.

정리해고제 도입등 강력한 개혁의지를 보여 한국이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심어줘야 합니다.”

- 왜 근로자만 고통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근로자는 많아야 10%, 20% 정리해고되겠지만 부실 기업주들은 이번 구조개혁과정에서 1백% 정리해고되는 겁니다.

시장을 통한 처벌이 가해지는 겁니다.

기업주들이 인수.합병과정에서 기업을 뺏기게 되는 것보다 더한 처벌이 어디 있겠습니까. ”

- 정치권도 금융기관 정리해고 도입을 2월 임시국회로 잡고 있는데 그럴 여유가 있나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제가 욕을 먹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金당선자께서 정리해고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으면 정치권이 나서서 화살을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

- 우리는 남미와는 위기의 원인이 다른데 IMF에서 획일적인 처방을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중남미국가들은 방만한 적자재정과 인플레로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환율을 강제로 고정시켜 자국통화를 과대평가했습니다.

그러니 외국자본이 이탈할 수 밖에요. 우리는 재정은 건전한데 금융부분이 위기였습니다.

부실 금융기관들을 건전화시키기 위해 부실채권들을 공적자금으로 처리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금을 더걷고 예산을 7조원정도 삭감해 금융산업을 건실화하는 자금을 마련하자는 것이죠. 남미와 원인은 다른데 결과적으로 처방은 똑같은 '재정지출 축소' 가 된거지요. ”

- 金당선자의 대중경제론은 시장경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걸로 압니다.

金당선자는 시장경제주의자입니까.

“金당선자가 대중경제론을 쓸 당시 저와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시장경제주의를 신봉하고 잘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문제, 즉 노동자의 권익과 약자들의 사회보장에 관심이 남달랐다는 것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처지만 아니라면 사회정의를 감안한 자유시장경제가 아무 문제될 게 없지요. 이번에 미국에서 들은 얘긴데 '金당선자니까 정리해고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하더군요. 케네디는 중국을 못갔어도 닉슨은 반공주의자라서 중국에 갈 수 있지 않았습니까. ”

- 이번 경제위기를 놓고 아시아적 기업경영방식이 미국식 기업경영방식에 무너진 것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와 뇌물.압력으로 대출을 해 경제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원인이 그렇다면 처방도 명확합니다.

객관적 합리적 방식에 의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경제는 투명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 '팍스 아메리카나' 의 시대로 가는것 아닙니까.

“합리주의.실용주의 이런 것들이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고있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렇다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

- 12인 경제비상대책위 위원이 되셨는데 도정과 국정 어느쪽에 관심이 더 있습니까.

“재미는 도정이, 중요성은 비대위활동이겠지요. ”

- 마이클 잭슨,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 소로스 등과는 언제 알게됐습니까. “최규선 (崔圭先) 총재보좌역이 마이클 잭슨과 절친한 사입니다.

알 왈리드는 잭슨과 비즈니스 파트너이고요. 지난해 12월 잭슨이 방한했을 때 알 왈리드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한번 왔으면 좋겠다.

그게 어려우면 내가 가겠다' 는 그런 내용이죠. 그 뒤 소로스에게 편지를 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알 왈리드를 통해 소로스에게 편지를 전달했지요. 崔보좌역은 저와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깝게 지냅니다.”

- 이들 국제금융시장의 큰 손이 한국에 투자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는데요.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들은 한국에 투자할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결코 투자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왈리드와 소로스에게 '위기가 기회다.

당신들은 돈을 벌고 한국은 위기를 극복할 기회다' 는 점을 설득하고 있죠. ” - 새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습니까.

“위기상황을 넘기면 도정으로 원대복귀하겠다고 金당선자께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안된다고 안하셨으니까요 뭐. 2년반동안 상당히 보람도 느꼈습니다.

당선자께서 지방자치를 더 확대한다고 하셨으니 앞으로 지사로서 할 일도 많을 겁니다.”

- 柳지사가 갑자기 국내외의 주요인물로 떠오르게 된데 대해 주변의 시기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요.

“제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때 金당선자께서 '정치계는 모함도 많은데다.

그것을 견뎌낼 수 없다면 일찍 포기하라' 고 충고하셨지요. 저에 대한 설왕설래는 개의치 않습니다.”

- 앞으로 더 큰 정치적인 꿈은 없습니까.

“국가적 경제위기속에서 제가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하나님과 金당선자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제 개인에게는 대단한 축복이었습니다.”

- 그래도 金당선자가 중책을 맡기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요. 운동경기에서 강팀이 최약체팀에 간혹 지는 이유는 얕잡아보고 그 다음 경기에 신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게임인 도정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정리 = 최훈 기자

<유종근지사 약력>

▶1944년 전북정읍 출생

▶1966년 고려대 경제학과졸

▶1973년 미 뉴욕주립대 경제학박사

▶1973~94년 미 뉴저지주립 럿거스대 교수

▶1979~81년 뉴욕 자유신문논설위원

▶1979~90년 미 뉴저지주지사 경제자문관

▶1980~85년 북미주 민주구락부연합회 정책위원장.사무총장

▶1985년 재미 한국인권문제연구소장

▶1987년 평민당 김대중총재 정책기획특보

▶1991년 민주당 홍보위원장.당무위원

▶1994년 아태평화재단 사무부총장

▶1995년 전북도지사 당선

▶1997년 12인 경제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주요저서 : '미국에서 본 한국의 정치.경제' '경제분석과 정책' (영어판) '세계화와 지방화시대의 지역경제' '아내에게 들려주는 경제이야기' '한반도 통일의 철학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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