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서 ‘아리랑 파티’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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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의 배경은 서기 9만4068년. ‘춤의 나라’와 ‘화랑 나라’, 그리고 ‘소리 나라’가 맞서 싸우는 시기다. 이 나라를 지키는 세력은 각각 비보이, 한국 무용가, 북 연주자. 규모가 큰 드라마와 서로 다른 장르의 몸짓이 뒤섞인다. 강렬한 타악기 리듬이 특징이다.

2007년 5월 시작해 이듬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화제가 됐던 공연 ‘아리랑 파티’의 내용이다. ‘아리랑 파티’는 올해 3월 우즈베키스탄에서 4000석 만석을 기록하며 공연된 데 이어 올 하반기 스페인·아일랜드 등 세계 투어를 시작한다. 이밖에도 태권도를 접목한 공연 ‘태권 12지신’(가칭)으론 23일 대한태권도협회와 제작 MOU를 체결했고, 190여 개국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춤과 타악기 연주, 비보이와 태권도 등 ‘무대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배포 큰 약속을 내걸었다.

이런 생각은 누구에게서 나왔을까. 록그룹 ‘백두산’ 출신의 타악기 연주자 최소리(43·사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최소리는 “허황된 꿈이란 건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1999년 ‘후불제 공연’을 내걸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돈 내지말라”는 시도를 시작했다. “언젠가 후불제 공연 전용 극장을 짓고 싶다”는 것이 현재 그의 꿈이다.

독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이한 인생 이력 때문이다. “전라도 깡촌에서 자랐다. 장이 열릴 때마다 꽹과리 두드리던 약장수에게 반해 무조건 저런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가출해 도시로 올라왔다. 목욕탕 때밀이, 중국집 배달원 등으로 일했다. 그러면서도 드럼 스틱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밴드에 들어가리라는 꿈 때문이었다. 결국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룹 ‘백두산’에서 4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

“요즘엔 외국에서 공연하면 한국 공연보다 10배의 개런티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 특유의 정서와 기운을 담은 몸짓과 음악을 섞어 공연을 특성화한 덕이다. 그 결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초청 연주자가 됐고, ‘아리랑 파티’는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의 ‘올해 넌버벌 퍼포먼스’ 상을 탔다. 최 소리는 “서열·학연·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공연만 하겠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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